사회 쟁점이 되는 이슈는 일반화해서 파악
논술에서 시사적인 쟁점을 다루는 문제가 직접적으로 출제되지는 않지만,분명히 시사적인 문제는 논술의 주된 소재다.
시사적인 쟁점 자체를 아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인간의 삶에서 지니는 의미,미래의 우리 삶과 관련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시사적인 문제가 출제될 때에는 교과서와 연관을 지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논의의 내용을 일반화해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무의미하게 보아 넘길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지니는 본질적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태도가 논술에서는 중요하다.
현재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중증장애인에게 매달 지급되는 80만원 정도의 장려금이 절반 정도 삭감된다.
얼마 전 최저생계비로 한 달을 살아보려는 시도가 보도된 바 있지만 단돈 40여만원으로 한 달을 살아가라는 말은 어느 참석자가 절규한 것처럼 '우리보고 죽으라는 소리나 다름없는' 것이다.
장애인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들이 시혜의 관점에서 복지를 구걸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이들은 사회통합과 자립적 삶의 전제인 노동할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한다.
결혼 전에 직장생활을 하다 지금은 살림을 하는 어느 주부의 말이 떠오른다.
매일 출퇴근하던 그 시절로 정말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노동함으로써 무언가를 창조하고,동료들과 함께 고락을 나누며,공동체의 구성원이었던 그 소속감,그 연대감이 미치도록 그립다고 했다.
다시 펼쳐본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많은 생각거리를 주었다.
데니소비치는 수용소에 갇혀 강제노동에 동원되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으면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노동과업을 통해 역설적으로 어떠한 순수한 기쁨을 느낀다.
심지어 사형수에게도 노동의 의미는 각별하다고 한다.
사형수는 형이 집행될 때까지 미결수이므로 작업사역을 시키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노동에 목마른 이들은 징벌받을 각오를 하고라도 손을 놀려 뭐라도 만들고 싶어 한다.
그들에게는 버린 빵 봉지로 장신구를 만드는 하잘 것 없는 일도 '노동'의 의미를 지닌다.
노동은 인간에게 자긍심,존엄성,독립심,성취감을 불어넣어 주는,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핵심적인 조건인 것이다.
노동부가 고용 장려금을 보는 기본적인 관점은 그것이 복지문제이지 노동문제는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게 볼 수 있는 여지도 있다.
그리고 장애인에 대한 복지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러나 장애인 노동을 복지적 관점으로만 접근하면 자칫 수혜자를 수동적이고 단순한 시혜의 대상으로 만들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