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버스의 마음씨
산골 깊숙이 숨어있는 마을들을 세상과 연결해 주던 시골버스. 느티나무가 서 있는 허름한 담뱃가게 창문에는 시간표가 붙어 있다. 외지인은 가게 툇마루에 앉아 버스를 기다려 보지만 예정된 시간이 되어도 버스는 나타나지 않는다.'이제 올거여'라는 가겟집 할매의 말마따나 주민 한두 명이 모습을 드러내는 건 예정된 시간보다 30분이 지나서다. 산 어귀를 돌아 먼지바람과 함께 버스가 나타난다. 외지인은 급한 마음에 서둘러 버스에 오르지만 기사는 시동을 꺼버리고 아예 차에서 내린다. 본격적으로 승객들이 시골 정류장 앞에 모여드는 건 버스가 도착하고 나서다. 먼지바람과 시끄러운 엔진 소리가 '읍내 볼 일 있는 사람 이제 모이소'라는 신호였기 때문이다. 앞 마을에서 탄 사람들도 비슷한 사정이었기에 출발을 재촉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애타는 외지인만 의자에 편히 기대지도 못하고 괜히 허리만 꼿꼿이 펴고 앉아 있다. 한나절 한 대밖에 없는 시골버스는 한 명의 승객도 버려두지 않으려고 이렇듯 마음씨 좋게 운행되곤 했다.
◆경제학자들의 냉정함
폴리 사이는 주요 항공 이착륙 노선의 바로 아래 지역에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데,어느 날 아침 제트비행기 소리에 수면을 방해받고는 보상받을 권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녀는 공항,또는 항공사가 자신의 휴식과 재충전의 권리를 박탈한 대가로 얼마간이라도 보상을 받기 위하여 법적으로 제소한다. 그녀는 의당 보상을 받아야 하는가? (폴 헤인 '경제학적 사고방식')
마음씨 좋은 사람들은 대기업인 항공회사나 공항이 폴리 사이의 권리에 대해서 어느 정도 보상해 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일단 법원이 폴리 사이의 손을 들어주게 되면 수천 혹은 수만 명의 주민들이 비슷한 보상을 청구할 것이다. 법원의 판결과 동시에 공항 주변의 주택가격은 크게 오르겠지만 보상을 떠안게 된 항공사의 주식은 곤두박질 칠 것이다. 대기업의 주식이 내리고 서민들의 집값이 오른 게 뭐가 문제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젊어서 열심히 일한 부부의 노후보장이 바로 그 항공회사의 주식일런지 모른다. 비용을 견디지 못한 항공사가 관련 노선 운항을 중단하게 되면 부자가 아닌 게 분명한 직원 일부가 직장을 잃을 것이며,그 노선을 이용하던 승객들은 더 비싼 교통수단을 선택해야 한다.
그럼 폴리 사이의 권리는 무시해도 좋다는 말인가? 경제학자들은 폴리 사이의 처지가 안타깝긴 해도 이미 기대한 선택이기 때문에 이 기대를 뒤집는 것이 더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가격은 기대를 반영한다
세상에 완벽한 주거지역은 없다. 소음도 없고 도심과도 가깝고 안전하며 편의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고 게다가 공기도 맑은 지역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완벽하진 않아도 어느 정도 이런 조건을 갖춘 지역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지역을 원하기 때문에 이런 지역에 거주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과 경쟁해야만 한다. 경쟁은 호가(呼價)를 높인다. 결국 사람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요소들을 만족하면서 동시에 집값까지 저렴한 거주 지역은 있을 수 없다.
항공노선을 유지한다는 기대가 항공회사의 주식가격에 포함되어 있는 것처럼 그녀의 집값에는 새벽잠을 깨우는 소음의 가격이 반영되어 있다. 법원이 이런 기대를 뒤집고 폴리 사이의 손을 들어주면 집값이 오르게 되는데 이것은 부의 창출이 아니다. 항공사의 주식가격이 폭락했기 때문에 부가 이동했을 뿐이다. 이런 예상하지 못한 재분배는 사람들의 선택과 그간의 노력을 흩뜨려놓기 때문에 불공평하다. 누군가에게 기대하지 않던 횡재는 누군가에게는 기대하지 못한 손실을 의미한다. 폴리 사이의 처지를 염려한 법원의 선량한 마음은 공평성을 훼손했을 뿐 아니라 사회적 비용까지 증가시킨다.
◆재량권의 비극 산골 주민들은 왜 제 시간에 정류장으로 모이지 않을까? 버스가 자기를 버리고 가는 일이란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일까? 제 시간에 가면 분명히 손해 보기 때문이다. 괜히 서둘러 나가봐야 시간만 허비한다. 그 시간이면 고추를 널 수 있고 밭 한 뙈기를 더 김매기 할 수 있다. 시간은 도시나 시골이나 귀중한 자원이고 선량한 사람들도 계산은 할 줄 안다. 누구나 기다려주는 마음씨 좋은 버스기사는 결국 모든 사람을 기다리게 만든다. 시간을 냉정하게 지키면 하루 두 번도 운행할지 모르지만 한 번에 족하면서도 느려터진 교통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외지인이 골탕 먹는 것은 한 번이지만 버스를 이용하는 모든 주민들은 늘 손해를 보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