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합리성과 공적 합리성은 일치하지 않는다”
아담 스미스는 저승에서 귀가 간지러울 것이다.
여기저기에서 고전경제학의 태두인 그의 이론에 결함이 많다고 지적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비판은 오랜 세월을 걸쳐 다양한 방면에서 계속 진행되어 왔는데,가장 대표적인 문제점은 개릿 하딘이 지적한 '공유의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하딘은 과학잡지 Science에 기고한 글에서,개인들이 이기심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공유자원을 남획하여 궁극적으로 사회공유재가 고갈되는 문제점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그가 '공유의 비극'에서 언급한 '목초지' 사례는 고등학교 사회 교과서에도 인용되고 있어 간혹 '공유의 비극'이 '공유지의 비극'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사례가 왜 스미스의 가장 강력한 비판이 되는 것일까?
스미스는 개인에게 이기적이어도 된다고 하였다.
사실,웬만한 철학이나 종교에서는 개인의 이기심을 옳지 못하다고 한다.
뭇 이념체계와 신앙에서 이기적 태도가 그르다고 주장하는 이유는,개인의 이기심은 타인이나 사회 공동체에 해악을 미치고 종래에는 결국 그 본인에게도 좋지 않다는 것 때문이다.
하지만 스미스는 오히려 반대의 주장을 내세웠다.
그는 개인의 이기심이 공동체 전체의 발전으로 귀결된다는 요지의 국부론을 집필하면서,개인의 이기심이 긍정적이라고 명시하였다.
칼뱅의 예정설(현세에서 부자이면 이는 구원의 징표이기 때문에 천국을 가고,현세에서 가난하면 지옥에 간다는 이론)과 함께, 스미스의 이러한 논지는 사람들에게 탐욕적이라는 비난에서 벗어나 자신의 부를 축적하기 위해 마음껏 달려도 된다는 반가운 허가증이었다.
그러나 하딘이 '공유의 비극'에서 논한 대로,개인의 합리적 행위의 총합이 사회 전체적인 차원에서도 항상 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개인이 이기적이어서 사회가 발전하려면,개인적 차원에서의 합리성이 사회적 차원의 합리성으로 이어져야 하는데,하딘은 이를 극명하게 부정하는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사적 합리성과 공적 합리성의 불일치는 결국 사회 공동체를 위해서 어떠한 방식으로든 개인에게 허용된 자유의 제한이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나아가게끔 한다.
하지만 하딘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인의 자유를 어느 정도로 어떻게 제한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뚜렷이 밝히지 않았다.
그 몫은 하딘이 제기한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우리가 모두 함께 모색해야 할 일이다.
시민의식의 개선이 우선인지,공유재를 사유재로 전환하는 것이 좋은지,아니면 개인의 활동을 적정한 수준으로 조율할 제도가 있어야 하는지 다양한 해결방식이 강구될 수 있는데,어느 방안이 가장 적합한지는 각자 숙고해보길 바란다.
이러한 고민이 꼭 필요한 이유는 논술시험에서 하딘의 글이 단골로 인용되는 제시문이기 때문이다.
하딘의 글은 고등학교 교과 과정에도 실리는 글이니 만큼 서울대학교 기출문제처럼 원문으로 출제된 경우도 있으며,여기에 제시된 동국대학교 문제처럼 서강대학교와 성균관대학교 등 다른 많은 대학의 시험에서 비록 원문이 그대로 등장하지는 않았으나 논지를 핵심적으로 추출 · 편집한 제시문을 통해 여러번 하딘의 문제의식을 품은 논제가 출제된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