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은 권력으로부터 벗어날수 없다? 불교의 경전은 '여시아문(如是我聞)'이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불법(佛法)을 '내가 이와 같이 들었다'는 의미이다.
붓다 사후 그를 따르던 제자들에 의해 경전 정리작업이 진행되면서,스승의 말씀을 기록하는 제자들이 경전의 앞머리에 '여시아문(如是我聞)'을 달아둔 것이다.
스승의 진실한 육성을 왜곡 없이 공손하게 옮긴다는 뜻도 되겠고,교법을 의심하는 자에게 스승님이 언제 어느 장소에서 말씀하시는 것을 두 귀로 똑똑히 들었으니까 의심을 접으라는 의미도 되겠다.
혹은 첫머리에 '여시아문(如是我聞)'이라는 언표(言表)를 둠으로써 자기 확신의 교리를 감히 스승의 사상으로 갈무리하려는 괘씸한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살아 생전 붓다가 설법할 때 그의 말을 이해하고 염화미소를 띤 제자는 하나였는데,경전 작업은 너나없이 하였으니 다들 '여시아문(如是我聞)'이라며 떠들지만,과연 제대로 듣기나 하였을까 싶다.
하지만 자신의 귀를 때린 붓다의 쟁쟁한 설법이 그와 같았다고 하니 수천 년 전 이 세상을 밟고 다녔던 붓다와 일견 면식도 없는 우리로서는 일단 믿어주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붓다의 제자들은 '여시아문(如是我聞)'이라며 글을 시작하지만,다른 일반 작가들에게는 또 다른 여시아문,즉 '여시아문(如是我問)'이 필요하다.
'내가 이와 같이 묻노라' 하는 의식도 없이 이 세상을 관찰하고 자신의 글을 내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신이 답을 찾고자 하는 주제에 관한 날카로운 의문(如是我問)은 일생을 가로지르는 치열한 탐구의 모태이다.
그러므로 당신에게 전해지는 답에만 주의하지 말고,당신이 묻고자 하는 질문을 유심히 살펴보라.
당신을 결정짓는 무엇인가가 그 속에 똬리를 틀고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던지는 질문은 모두 제각기 다를진대,오늘 소개하는 엘리아스 카네티(Elias Canetti · 1905~1994년)가 품고 다녔던 의문은 '군중'이라는 화두였다.
카네티는 평생을 코스모폴리탄으로 살면서 20세기를 휩쓸었던 다양한 역사적 사건을 계기로 군중에 눈을 뜨게 되어 군중에 관해 묻고 스스로 답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1905년 루스추크(당시는 불가리아였으나,현재는 러시아)에서 태어나 1911년 영국으로 이주한 카네티는 여섯 살 때 갑작스럽게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홀로 된 어머니를 따라 어린 시절부터 오스트리아,스위스,독일 등 여러 나라를 전전하였다.
그 덕분에 카네티는 자연스럽게 고대 스페인어와 불가리아어,영어,독어,프랑스어를 일찍부터 접할 수 있었지만 집필 활동만은 항상 독일어로만 수행하였다고 하니 코스모폴리탄인 그에게 마음의 조국은 독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카네티는 성장하여 빈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까지 받았으나 어디까지나 주요 관심사는 문학과 철학이었고,그가 평생을 품고 다녔던 질문은 군중 현상이었다.
카네티가 군중에 관심을 가진 구체적인 계기가 되었던 사건은 1924년 독일 국수주의자들이 저지른 라테나우 외무장관 암살 사건에 항의하기 위해 노동자들이 벌인 대규모 시위였다.
카네티는 그 때 체험하였던 놀라움을 다음과 같이 술회한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