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은 인간을 타락시키는 위험천만한 것이다”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라는 말이 있다.
웃어야 온갖 복이 찾아 든다는 뜻이다.
구중중하게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는 사람에게는 행운의 여신도 다가가기 싫을 것이다.
그러니 복이 넝쿨째 굴러오려면 생글생글 웃고 다녀야 하겠다.
그런데 웃고 다니기는커녕 아예 웃음 자체에 관해서 일언반구 입도 뻥긋하지 말라는 사람이 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그런 사람이 '있었다'.
아니 이건 또 무슨 괴이한 소리냔 말인가.
하지만 이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바로 세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소설,「장미의 이름」에서 흥미진진하게 드러나는 갈등 테마이다.
14세기 중세 유럽의 수도원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추리소설 「장미의 이름」은 워낙 유명하여 누구나 한번쯤 그 제목을 들어보았을 작품이고,숀 코네리가 주연으로 나온 동명의 영화를 본 사람도 상당수 될 것이다.
그리고 설령 「장미의 이름」을 접하지 못 했다 하더라도,저자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 · 1932년 출생)가 워낙 왕성한 문필 활동을 하는 작가라서 서점 출입을 조금이라도 한다면 이 사람의 책과 필연적으로 조우하게 된다.
당신이 서점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에코의 작품들이 곳곳에서 얼굴을 내밀며 당신을 맞이할 것인데 몇몇 대표적인 작품들은 요즘 곱디 고운 색깔의 양장본 옷을 단체로 맞춰 입고서 자태를 뽐내기도 한다.
당신이 아무리 서점 안에서 이리저리 용케 움베르토 에코의 이름을 피해 다니려 해도 '푸코의 진자','전날의 섬','바우돌리노','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과 같은 일련의 소설 작품이라든가,아니면 '기호학 이론','토마스 아퀴나스의 미학 문제','중세의 미와 예술','문학 강의','해석의 한계','미의 역사','연어와 여행하는 방법','미네르바 성냥갑','철학의 위안','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과 같은 이론서 내지는 수필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혹자는 에코에게 지식계의 티라노사우르스 렉스(Tyrannosaurus Rex)라는 별명도 붙여줬다는데,방금 예시로 든 책의 제목만 살펴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직업은 공식적으로는 볼로냐 대학의 기호학 교수이지만,비단 기호학뿐만 아니라 미학,언어학,철학,문학,비평 등 다양한 방면에 재능을 보이며 중세 철학에서 현대의 대중문화 담론에 이르기까지 넓은 영역을 활발히 드나들고 있다.
엄청난 양의 독서와 다양한 지적 편력을 자랑하는 에코에게 티라노 렉스라는 별명은 어색하지가 않다.
여하튼 이러한 에코에게 인기몰이를 해준 작품이 바로 '장미의 이름'인데 그 유명세에 걸맞게 얼마 전에는 '장미의 이름 창작노트'라는 책까지 출판되었다.
'장미의 이름'은 요한묵시록의 구절과 함께 어우러지는 수도원의 연쇄살인 사건을 주축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단순히 중세를 배경으로 하는 흥미로운 추리소설에 지나는 것이 아니라,서양문화의 전반을 복합적으로 맛볼 수 있는 심층적인 작품이다.
책의 많은 문장을 다른 유명한 고전에서 담아온 이 소설은 에코가 집적한 방대한 지식이 녹아 있어 읽는 동안 서양 문화의 숲을 헤치고 지나오는 느낌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