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딜레마는 비교 불가능한 가치나 대안에 대해, 어느 하나의 대안을 선택하면 선택되지 않은 대안이 주는 기회 손실이 크기 때문에 선택이 곤란한 상황을 말한다. … 정부는 정책 딜레마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꾸준히 탐색해 왔다.
‘합리 모형’은 정책 목표와 수단 사이에 존재하는 인과 관계의 적절성 등을 확보하여 딜레마 상황에서 최적의 대안을 선택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충분한 시간, 예산, 정보 등이 의사 결정자들에게 주어지면 모든 가능한 대안을 검토할 수 있으므로 합리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족 모형’은 합리 모형이 전제하는 상황은 오지 않기 때문에 최적 수준의 결정보다는 만족할 만한 수준에서의 결정을 강조한다. 선택 상황에 놓인 의사 결정자들의 신속한 결정은 그 결정의 도덕적 속성이나 논리적 속성과는 무관하게 정책 결정의 불확실성을 제거하여 사회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고 본다. 어떤 결정을 하든지 능률적인 방향으로 자원을 배분할 수 있는 시장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이다.
정책 딜레마의 지속은 사회 전체의 비용을 급격히 증가시킨다. 충분한 예산과 정보가 갖춰질수록 검토해야 할 시간은 무한대로 늘어나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딜레마 지속으로 인한 비용 역시 대폭 증가한다.
이런 점에서 만족 모형은 주어진 시간과 예산이 부족하여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지는 결정이 아니라 딜레마 상황의 지속에 빠지지 않으려는 의사 결정자들의 전략으로 채택될 수 있다.
- 2022학년도 3월 교육청 전국연합학력평가 -
정책 딜레마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 ‘합리 모형’…‘만족 모형’
인간은 문제 상황(과제)에 맞닥뜨리고 그것을 해결하며 진화했기 때문에 이를 말한 글이 많다고 했다. 그런 글들은 ‘원인-문제(과제)-해결법-결과’로 나눠 파악하면 좋다고 했다. 이 지문도 ‘정책 딜레마’라는 문제 상황과 ‘합리 모형’ ‘만족 모형’이라는 해결법을 설명하고 있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지문의 ‘대안’은 ‘代案(어떤 안(案)을 대신하는 안)’이 아니라, ‘對案(어떤 일에 대처할 방안)’이다. 이를 고려해 ‘어느 하나의 대안을 선택하면 선택되지 않은 대안’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율배반’ ‘모순’ ‘양립불가’라는 말이 있는데, 이들은 두 가지가 동시에 따로 성립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동전의 앞이 나오면 뒤가 나올 수 없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인데,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결국 정책 딜레마는 두 ‘대안’이 동시에 선택될 수 없는 상황으로 이해해야 한다. 예컨대 방역을 위한 대안은 자영업자에게 불리한 대안이 될 수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므로 두 대안을 놓고 정책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기회 손실’은 한 품목의 생산이 다른 품목의 생산 기회를 놓치게 한다는 관점에서, 어떤 품목의 생산비용을 그것 때문에 생산을 포기한 품목의 가격으로 계산한 ‘기회비용’에서 온 말이다. 경제 용어인 기회 손실에 대해 별다른 설명이 없어 국어 문제에 적합한 것인지 논란이 될 수 있는데, 출제 선생님은 이 정도의 개념은 고등학생으로서 알고 있어야 한다고 본 것 같다.
지문의 ‘모형’은 일상생활에서의 의미가 아니라, 어떤 현상을 설명하는 model을 번역할 때 쓰는 말로 이해해야 한다. 즉 ‘합리 모형’은 ‘최적의 대안을 선택’함으로써 ‘합리적으로 결정’하는 것을, ‘만족 모형’은 ‘만족할 만한 수준에서의 결정’을 핵심으로 해 정책 결정을 설명한 것이다.
최적 수준의 결정보다는 만족할 만한 수준에서의 결정…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지는 결정이 아니라 …에 빠지지 않으려는
‘A보다 B’ ‘A가 아니라 B’는 A와 B를 반대 관계로 이해하면 좋다고 했다. 이 지문에서도 이를 활용하여 읽으면 개념 이해에 도움이 된다. ‘최적(가장 알맞음) 수준’의 반대 관계인 ‘만족할 만한 수준’을 ‘알맞지 않은 수준, 덜 알맞은 수준’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최적의 대안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결정’한다고 했으므로 ‘만족할 만한 수준’은 ‘비합리적인 수준’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지는’은 수동적, 소극적, 체념적 태도다. 그렇다면 그것의 반대 관계인 ‘…에 빠지지 않으려는’은 능동적, 적극적, 도전적 태도로 이해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