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언택트 上
“삑. 정상입니다. 격리 수칙 확인하시고요.”예기치 않은 코로나19 사태에 프랑스에서 급히 귀국한 성현(김주헌 분)은 14일간의 자가 격리에 들어간다. 넓지 않은 도심의 오피스텔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리 많지 않다. 2주간 맞닥뜨려야 할 긴 자신과의 싸움이 막막하기만 하다. 그러던 중 친구로부터 옛 연인 수진(김고은 분)이 유튜브에서 브이로그(일상을 촬영한 영상 콘텐츠)를 운영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지난 10월 개봉한 김지운 감독의 단편 영화 ‘언택트’는 코로나19 속 일상에서 과거에 헤어진 연인이 서로를 비대면으로 접하며 그리워하는 내용을 담은 로맨스 영화다. 국내 최초로 휴대폰 8K 영상으로 전 과정을 촬영해 모바일을 통해 상영하면서 이목을 끌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이제는 일상으로 자리잡은 ‘언택트 시대상’을 실감나게 그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게으름 경제’가 부른 ‘배달 일상’
영화 속 성현의 하루는 길고도 길다. 매일 공무원으로부터 ‘발열 증상이 없느냐’며 걸려 오는 전화가 얼마 되지 않는 외부와의 소통이다. 구청에서 보내준 즉석 조리식품 중 무엇을 먹어야 할까가 하루의 최대 고민이다. 손수 드립 커피도 내려 마셔 보고, 소파에 기댄 채 읽고 싶던 책도 훑어보지만 시간은 도무지 흐르지 않는다. 스르르 잠이 들었다가 깬 뒤 시계를 쳐다보지만 바늘은 더디게만 간다.답답한 일상이지만 살아가는 데는 큰 무리가 없다. 배달되는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필요한 대부분의 물품은 온라인을 통해 배송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우리의 일상도 마찬가지다. 이동 및 다른 사람과의 만남이 불필요하다는 생각이 강해지면서 ‘게으름 경제(lazy economy)’는 이미 하나의 사회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게으름 경제’란 자신이 원하는 일 외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어하는 현대 소비자들이 주도하는 경제를 뜻하는 말이다. 이들은 음식 배달·배송은 기본이고 청소·빨래 등 집안일, 잡다한 심부름 등을 비롯해 ‘본업’이 아닌 분야는 주로 대행 서비스를 이용한다. 대신 아낀 시간을 자신이 원하는 곳에 쓴다. 지난 4월 설문조사 업체 오픈서베이가 20~59세 남녀 소비자 1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 따르면 배달 서비스 이용자 중 절반 이상(59.5%)은 1주일에 한 번 이상 배달을 이용했다. 이용하는 이유로는 ‘집에서 음식을 해먹기 귀찮아서’라고 답한 비중이 ‘외부 환경 요인으로 외출이 꺼려져서’보다 높았다. 사실은 코로나19 감염 우려보다 ‘귀차니즘’이 더 많은 배달 폭증을 부른 셈이다. 배달을 통한 일상에 익숙해진 성현이 격리가 끝나고 나서도 배달 음식을 즐겼을 것으로 예측되는 이유다. ‘구독’을 누르니 달라진 세상지루하지만 별 탈 없이 격리 11일째를 맞은 성현에게 외로움이라는 최대 고비가 찾아온다. 수진에게 메시지를 보내 보려 휴대폰을 쥐었다가 이내 그만둔다. 그녀에게 아무런 약속도 하지 못하고 메시지 하나 남긴 채 홀로 유학길에 올랐고, 미안함에 3년간 단 한 번도 연락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신 유튜브를 열어 본다. 수진이 운영하는 채널 ‘지니TV’에는 그녀가 예전 그 모습 그대로 서 있다.도예 공방을 운영하는 수진은 개인 채널에서 먹방(먹는 방송), 운동 등 평소 일상을 담은 브이로그 채널을 운영 중이었다. 성현은 이곳에서 수진의 일상을 훔쳐본다. 삼겹살을 입에 넣고 활짝 웃는 모습을 보며 격리 생활 중 처음으로 미소를 띤다. ‘초보 요기니’라며 친구와 어설픈 요가 동작을 하다 무너지는 모습도 귀엽기만 하다. “구독, 좋아요! 꼭 눌러주실 거죠?” 영상 마지막에 나오는 그녀의 부탁에 손가락은 어느새 구독 버튼을 향한 지 오래다.코로나19 이후 급격히 부상한 또 다른 메가 트렌드가 ‘구독경제’다. 구독경제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소비자가 구독하면 정기적으로 보내주는 비즈니스 모델을 일컫는 말이다. 매일 아침 집 앞에 셔츠를 드라이클리닝해 가져다 준다거나, 매달 같은 날짜에 전통주나 꽃·화장품·속옷 등을 골라 보내주는 서비스 등 종류는 무궁무진하다. 콘텐츠 분야에서는 유튜브가 대표적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CS)는 세계 구독경제 규모가 2015년 4200억달러에서 올해 5300억달러 규모로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