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트니 휴스턴-머라이어 캐리
‘디바(diva)’는 실력 있는 여성 솔로 가수를 수식할 때 으레 쓰는 용어다. ‘재즈 디바’ ‘발라드 디바’ 등 대중음악계에서 익숙한 이 표현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클래식계에서만 쓰였다. 이탈리아어로 ‘여신’을 뜻하는 이 타이틀은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소프라노들에게만 돌아갔다.
대중음악계에서 ‘디바’라는 찬사를 처음 받았던 인물은 지난달 갑작스런 죽음으로 전 세계 음악팬을 비탄에 빠지게 했던 흑인 여가수 휘트니 휴스턴이다. 영화 보디가드의 주제곡 ‘I’ll always love you’로 잘 알려진 휴스턴은 타고난 감수성과 탁월한 가창력으로 그래미상 33회, 빌보드 어워드 16회, 아메리칸 뮤직어워드 22회 등 2010년까지 무려 415개의 상을 휩쓸며 세계에서 가장 많은 상을 탄 여가수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그런 휴스턴에게도 라이벌이 있었다. 1990년대 함께 활동하며 휴스턴보다 더 많은 빌보드 싱글차트 1위곡을 탄생시켰던 혼혈 여가수 머라이어 캐리다.
●타고난 재능 vs 신데렐라 스토리
두 사람의 어린 시절은 판이하게 달랐다. 1963년 미국 뉴저지에서 태어난 휴스턴의 어머니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백업 보컬을 담당했던 유명 가스펠 가수 시시 휴스턴이고, 사촌 언니는 1960년대 대표적 리듬앤드블루스(R&B) 가수인 디온 워릭이다.
캐리는 휴스턴보다 7년 뒤인 1970년 오페라 가수인 어머니와 항공우주공학자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로부터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물려받았지만, 세 살 때 부모의 이혼으로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게 됐다. 가수의 꿈보다는 눈앞의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하는 게 먼저였다. 미용학교 등에서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반면 선택받은 환경에서 자란 휴스턴은 어머니를 도와 클럽에서 가스펠 가수로 활동하던 1983년, 아리스타 레코드의 대표였던 유명 제작자 클라이브 데이비스에게 캐스팅되며 먼저 기회를 잡는다. 1985년 자신의 이름을 딴 앨범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으로 데뷔한 그는 무대를 날려버릴 듯한 파워풀한 성량, 신인답지 않은 감정 처리, 호소력 짙은 흑인 특유의 음색을 선보이며 백인 음악 중심으로 짜여 있던 대중음악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데뷔 앨범은 14주간 빌보드 앨범차트 1위에 머물며 전 세계 솔로 가수의 데뷔 앨범 중 최고 기록을 세웠다. 이때 캐리는 뉴욕 한 레스토랑의 평범한 웨이트리스로 일하고 있었다. 그러던 캐리에게 ‘신데렐라 스토리’가 펼쳐지기 시작한 것은 휴스턴이 2집 앨범을 내던 1987년. 우연한 기회에 댄스 팝 가수인 브렌다 스타의 백업 보컬로 활동하게 된 것이 계기였다. 캐리의 재능을 알아본 스타는 당시 소니뮤직 사장인 토미 모톨라를 만나 캐리의 데모테이프를 건넸고, 그날 밤 모톨라는 곧바로 캐리에게 달려가 계약을 맺는다.
●파워풀한 성량 vs 7옥타브의 기교
1990년 캐리는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딴 1집 앨범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로 등장한다. 7옥타브를 넘나드는 고음과 간드러지는 기교가 돋보이는 캐리의 창법은 풍부하고 깊은 성량과 안정감 있는 보컬로 사랑받던 휴스턴과는 상반되는 색깔이었다. 이 앨범은 대중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11주 연속 앨범차트 1위를 기록했고, 데뷔 싱글인 ‘Vision Of Love’를 비롯해 4개의 곡을 1위에 올려놓는 기염을 토했다.
그해 그래미상의 최우수 신인상, 최우수 여성 팝 보컬 퍼포먼스상을 동시에 휩쓴 캐리는 단번에 휴스턴에 비견될 만한 여가수로 떠오른다. 캐리의 소속사는 대놓고 “휘트니 휴스턴의 경쟁자 등장!” 이라는 문구를 내걸며 둘의 경쟁구도에 불을 붙였다.
하지만 휴스턴의 행보는 거침없었다. 캐리가 데뷔한 1990년 발매한 3집 앨범 ‘I’m Your Baby Tonight’은 1200만장이 팔려나갔고, 이듬해에는 배우로 변신해 또 다른 성공을 거둔다. 1992년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보디가드’에서 부른 주제곡 ‘I will always love you’는 당시 최고 기록인 14주간 빌보드 정상을 기록하며 그의 변함없는 인기를 증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