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량 생산 vs 차종 다양화… 美 자동차 100년史 양대산맥 “서민들도 탈 수 있는 저렴한 자동차를 만들겠다.”(헨리 포드) vs “오래된 것을 좀 더 유익하고 새로운 것으로 바꾸겠다.”(알프레드 슬론)
포드와 제너럴모터스(GM)는 미국 자동차산업을 대표하는 기업이자 오랜 경쟁자다. 포드 창립자인 헨리 포드와 GM의 전설적인 최고경영자(CEO) 알프레드 슬론은 한 치 양보 없는 승부를 벌이며 20세기 자동차산업 발전을 주도했다. 두 사람의 경영철학은 달랐다. 하지만 서로 다른 경영 방식은 결과적으로 자동차시장을 키운 원동력이었다. 포드는 대량 생산을 통한 자동차 대중화에, 슬론은 소비자 선택폭을 넓힌 차종 다양화에 경영의 주안점을 뒀다. 포드와 GM이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성장한 역사는 1924년 설립된 크라이슬러와 함께 북미 빅3라는 이름으로 세계 시장을 지배했던 미국 자동차산업의 역사 그 자체이기도 하다.
* 차는 귀족의 장난감이 아니다
헨리 포드는 1863년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시 인근 소도시인 그린필드의 농가에서 아일랜드계 이민 2세로 태어났다. 1879년 열여섯 살의 포드는 자그마한 기계제작소에 견습공으로 들어가 내연기관 제작을 처음 배웠다. 1891년 엔지니어로 에디슨 전기회사에 입사했고 능력을 인정받아 얼마 뒤 선임 엔지니어로 임명됐다. 집 뒤편 작업장에서 내연엔진 연구에 몰두한 그는 1895년 타이어를 사용한 4륜 구동 자동차 ‘쿼드리사이클’을 개발했다. 1903년 40세 때 마침내 동업자와 자본금 10만달러로 포드자동차를 설립하고 부사장 겸 선임 엔지니어 직책을 맡았다. 1908년까지 포드자동차는 알파벳을 딴 모델 A, B, K를 연이어 생산했다. 하지만 대중들이 구입하기에는 값이 비싼 데다 기존 자동차 회사들과의 치열한 경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포드는 2500달러에 팔았던 고급 세단 K의 실패를 계기로 ‘대중들이 탈 수 있는 저렴한 차를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부자들의 장난감인 자동차를 서민들의 생필품으로 바꿔야만 승산이 있다고 봤다. 곧바로 850달러짜리 신모델 T를 선보였다. 당시 자동차 평균 판매가격 2000달러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이었다.
포드는 이때 현대식 생산공정 혁신의 대명사인 포드 시스템을 도입하며 자동차산업뿐 아니라 전체 공업 역사를 새로 썼다. 대량 생산을 통해 생산 단가를 낮추기 위해 고심하던 그는 1913년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한 최초의 조립공정 시스템을 도입했고 이는 가내수공업 방식 생산이 대량생산 체제로 전환한 계기였다.
1923년 T 모델의 연간 생산 대수는 201만대에 육박했다. 16초에 한 대꼴로 자동차를 생산한 것으로 자동차산업은 본격적인 대량생산 시대를 맞이했다. T 모델은 1927년 단종될 때까지 1500만대라는 천문학적인 생산량을 기록했다. 포드는 이렇게 누구나 탈 수 있는 자동차를 탄생시키며 ‘자동차 대중화’를 이뤘다.
* GM "포드 독주를 막아라"
포드의 독주 체제에 제동을 건 회사는 GM이었다. GM 창립자는 윌리엄 듀런트다. 하지만 그는 뒤이어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른 알프레드 슬론의 명성에 눌렸다. 듀런트는 1908년 GM을 설립했지만 무리한 인수·합병(M&A)으로 회사를 두 차례나 경영난에 몰아 넣은 끝에 1923년 회장직에서 쫓겨났다. 듀런트가 인수한 회사는 39개에 달했다.
듀런트로부터 경영권을 넘겨받은 슬론은 곧바로 회사 개혁에 나섰다. 포드를 넘어서기 위해 산하 브랜드를 차종과 가격대별로 차별화하는 전략을 마련했고 서서히 미국과 세계 자동차시장을 장악해 나갔다. 그는 연령별·소득별로 서로 다른 소비자 수요를 고려한 자동차 라인업을 구성하며 현대식 마케팅 전략을 구사했다. 이를 통해 GM을 세계 최고의 자동차업체로 이끈 슬론은 경영계의 전설로 남았다.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한 그를 기려 MIT는 경영대학원 이름을 슬론(sloan)스쿨로 지었다. 1875년에 태어난 슬론은 커피 및 담배 제조회사를 경영하는 아버지 밑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는 MIT 졸업 후 포드자동차에 베어링을 납품하던 ‘하얏트 롤러 베어링’이라는 회사의 사장을 맡았다. 이후 이 회사가 GM에 합병되면서 슬론도 GM 이사회 멤버(부사장)로 참여했다. 1923년 슬론은 대주주이던 듀폰의 피에르 듀폰 회장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아 GM 사장 겸 CEO에 올랐고 1956년 명예회장으로 일선에서 물러날 때까지 34년간 경영을 총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