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쓰는 경제학원론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의 외로운 투쟁 구부정한 허리와 하얗게 센 머리카락. 힘없이 달달 떨리는 손목. 왜소한 체구의 노파다. 주변엔 늘 그를 보호하기 위해 고용된 젊은이들이 서성인다. 이들의 허락을 받지 않고선 노파는 외출 한번 맘대로 할 수 없다. 우유 한 통을 사러 동네 슈퍼마켓에 다녀온 날, 그는 어김없이 야단(?)을 맞는다. “또 몰래 나갔다 오셨어요? 그러시면 안 되는 분이잖아요!” 타지에 사는 아들에게 전화해도 돌아오는 것은 “바쁘다”는 쌀쌀맞은 답뿐이다.
노파를 유일하게 웃게 해주는 것은 이따금 집에 들르는 늙은 남편이다. 피에로 흉내를 내며 장난을 거는 남편은 아직도 소년 같아 보인다. 남편은 외로워하는 그를 부드럽게 토닥인다. “마거릿, 당신은 정말 멋졌어. 세상을 바꿔놓은 여자야.” 영화 ‘철의 여인’(2012)은 전 영국 총리인 마거릿 대처(메릴 스트리프 분)가 은퇴 후 쇠약해진 모습부터 먼저 비춘다. 두 개의 노동시장
“엄마! 저 옥스퍼드에 합격했어요!” 딸이 내민 대학 합격장을 잡으려던 어머니는 이내 고개를 돌려버린다. “손이 축축해 합격장을 만질 수가 없구나.” 마거릿은 가난한 식료품점 딸이었다. 어머니는 늘 손에 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마거릿은 생각했다. “엄마처럼 컵만 씻으면서 인생을 끝낼 순 없어.”
그는 신분 상승을 꿈꿨다. 그것도 세상을 바꾸는 정치인이 되겠다는 포부였다. 식료품점 주인이나 파출부처럼 새로운 기술을 배울 수 없고, 보수나 사회적 대우도 빈약한 1차 노동시장에서 인생을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신분 상승을 위해선 전문직 경영인 법조인 정치인 등 전문성과 숙련도를 필요로 하는 2차 노동시장으로의 진입이 필요했다. 문제는 두 시장 간 교류가 드물다는 점이다. 유일한 출구는 교육이었다. 옥스퍼드대 입학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다.
명문대를 졸업한 마거릿은 상류층의 저녁식사에 초대받는 데성공한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만난 한 아가씨는 여전히 그를 경멸하듯 쳐다본다. “식료품점 딸이라고요? 그럼 혹시 컵 같은 것도 씻나요?” 신분 상승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때 그에게 사업가인 데니스 대처(짐 브로드벤트 분)가 다가왔다. 마거릿의 당찬 성격에 반한 데니스는 몇 번의 데이트 후에 이렇게 프러포즈를 한다. “식료품점 딸은 정치인으로 성공할 수 없지만 성공한 사업가의 아내는 다르죠. 내가 도울 게요.”
여성이라는 굴레
데니스와 결혼한 대처는 변호사 자격증부터 땄다. 당시 몇 안 되는 세법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며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쌍둥이도 낳았지만 대처에게 자식은 뒷전이었다. 이어 선거현장을 뛰며 2차 노동시장이 요구하는 ‘기술적’ 역량을 착실하게 쌓아갔다.
하지만 그에겐 ‘식료품점 딸’이라는 굴레 못지않게 또 하나의 걸림돌이 있었다. 바로 여성이라는 점이다. 당시 고급 인력시장에 여성의 존재감은 극히 미미했다. 누구도 여성의 2차 노동시장 진입을 바라거나 기대하지 않았다. 실제 학식과 능력을 갖춘 많은 여성이 1차 노동시장, 보통인력시장에서 낮은 보수를 받으며 일을 해야 했다. 이런 상태가 오랜 기간 지속되면 과거 키웠던 능력도 점차 사라진다. 하지만 대처는 달랐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결혼한 지 9년 만에 의회 입성에 성공한다. 처음 의회에 발을 들여놓은 날, 그는 차 안의 아이들 장난감을 치워버렸다. 더 독해지기 위해서였다. 손전등을 챙기던 장관
이후 대처는 승승장구했다. 의회 입성 10여년 뒤인 1970년엔 교육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장관이 된 그는 핸드백 안에 늘 손전등을 넣어 다녔다. 당시 영국에선 정전이 잦았기 때문이다. 각료 회의 중에도 몇 번이나 전기가 나갔다. 탄광노동조합의 고질적 파업 탓이었다. ‘임금 인상률 5% 이하 억제’라는 가이드라인을 내세운 보수당 정권에 불만을 품은 것이다. 하지만 대처는 정전의 근본적 원인이 자신의 이권만 챙기는 강성 노조에 있다고 봤다.
노조가 추구하는 목표는 임금소득 증가와 고용 안정이다. 그런데 이 두 목표는 좀처럼 양립하기가 어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