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산업의 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일명 금산법)이라는 것이 있다.
1997년 제정된 이 법에는 금융회사의 구조조정을 촉진하기 위한 취지와는 동떨어진 엉뚱한 조항이 하나 들어 있었다.
이른바 금산법 24조라는 것인데,대기업 집단(일명 재벌) 내 금융사가 비금융 계열사 지분을 5% 이상 취득할 경우에는 금융당국의 사전 승인을 거치도록 하는 내용이다.
대기업의 지배관계를 규율하는 법령은 공정거래법이나 지주회사법 등인데 금융산업 구조조정 관련 법에 이런 조항이 들어간 것은 의외였다.
어쨌든 법안 내용을 속속들이 알지 못했던 기업들은 그로부터 7년이 지난 2004년 6월,정부의 일제조사에 걸려들고 말았다.
삼성을 비롯해 현대자동차 동부 동양그룹 등 13개 기업이 금산법을 위반한 것으로 지목됐다.
이들 그룹은 법 제정 이후 계열 금융사가 한도(5%)를 초과해 비금융사 지분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같은 시기에 적발된 기업이라고 해서 모두 비슷한 처지에 놓인 것은 아니었다.
다른 기업들은 초과 지분을 처분하더라도 지배구조에 별다른 영향이 없었지만 삼성은 달랐다.
◆삼성만 해당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갖고 있는 삼성은 삼성생명이 갖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7.3%)과 삼성카드가 보유하고 있는 삼성에버랜드 지분(25.6%)이 모두 금산법 위반 논란에 휩싸였다.
삼성생명이 갖고 있는 삼성전자 주식은 금산법 시행 이전에 취득한 것이었지만 참여연대와 일부 정치권 인사들은 법률을 소급 적용해 한도 초과분을 처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금산법의 소급 입법에 대한 위헌 논쟁으로 이어졌고,여기에 삼성공화국론이 덧씌워지면서 정부의 '삼성 봐주기' 논란으로 번졌고,급기야는 2005년 국정감사장을 뜨겁게 달구는 쟁점으로까지 떠올랐다.
◆산업-금융 분리 정당한가
우선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을 분리해야 한다는 논리부터 살펴보자.이 논리는 전통적으로 은행업에 적용돼온 것이었다.
중앙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고 고객의 예금으로 신용을 창출하는 은행업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일종의 '면허업'이었다.
은행업은 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시장질서를 떠받치는 공익적인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들은 은행업에 진입 장벽을 치고 관리 감독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이 산업자본의 은행 지배를 강력하게 규제하고 있는 것이나 우리나라가 대기업의 은행 지분 취득을 엄격하게 차단하고 있는 것은 이 같은 배경에서 비롯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금산법은 보험 증권 등 금융 전반을 규제 대상으로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삼성그룹의 경우 삼성생명이나 삼성카드와 같은 금융사들이 삼성전자나 삼성에버랜드와 같은 비금융사를 지배하는 것이 온당하느냐는 문제다.
이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금융사들이 재벌 기업의 사금고로 이용될 소지가 있다","고객의 돈을 이용해 총수의 경영권을 방어한다" 등의 얘기를 내세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