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헌법기관 중 하나인 사법부에 ‘양승태 시대’가 열렸다.
양승태 제 15대 대법원장(63)은 지난달 27일 취임식을 갖고 임기 6년을 시작했다.
양 대법원장은 2017년 9월까지 사법부를 이끈다.
부산 출신인 그는 경남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12회 사법시험에 합격, 1975년부터 36년간 봉직했다.
양 대법원장은 사법부 수장이 되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은 것 같다.
지난 2월 대법관 임기를 마치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 다시는 법원으로 안 돌아온다”고 말한 데서 알 수 있다.
대법원장 후보 제의가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면 ‘다시는 법원으로 안 돌아온다’는 완전 부정의 퇴임사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변호사 개업도 하지 않고, 수십억원대의 연봉을 제시하는 대형 로펌들의 러브콜을 마다하고,‘자유롭게 살기 위해’ 히말라야와 미국 로키산맥 트레킹에 나선 것을 보면 퇴임사의 진정성은 있었던 듯하다.
그의 스텝이 꼬인 것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요세미티 계곡 여행 중 걸려온 청와대 전화 때문이었다. 이용훈 대법원장 후임을 맡아 달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전화였다.
그는 이 대통령의 요청을 여러 차례 고사(固辭)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도록 후보 명단에 이름을 넣는 것조차 동의해주지 않았다.
완강했던 그의 마음이 바뀐 것은 친지들의 조언 때문이었다는 후문이다.
친지들은 “아무리 당신 인생을 맘대로 살고 싶다고 해도 평생 법원에 몸담았던 사람이라면 나라에 선택권을 주는 게 순서가 아니겠느냐”고 권고했다고 한다.
그는 이 말을 받아들이고 바로 귀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양 대법원장은 온건하고 안정 지향적 판결을 많이 해 보수 성향으로 분류된다.
대법원 판례를 뒤집는 이른바 ‘튀는 판결’을 내린 적이 거의 없다.
사회적, 정치적 분위기와 여론에 휩쓸리지 않고 오로지 법치의 정신에 따라 판결을 내렸다는 평가다.
2009년 ‘용산 참사’와 관련해 경찰관을 숨지게 한 철거민에게 중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고,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사건에 대해서는 북한의 실체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반국가단체에 대한 기존 해석을 바꿀 수 없다며 유죄 판결을 내렸다.
그의 앞에는 풀어야 할 숙제가 산적해 있다.
분쟁 조정자여야 할 사법부는 판결에서 법관 개인의 이념과 색깔을 드러내 분쟁 야기자가 됐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강기갑 의원의 공중부양 사건에 대한 무죄 판결은 대표적인 사례라는 지적이다.
양 대법원장은 또 자신의 임기 1년 안에 6명의 대법관을 교체해야 하는 중차대한 인사 문제도 처리해야 한다. 이념적 편향성을 떠나 오로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는 헌법 정신에 투철한 인물을 중용해야 한다.
그는 취임사에서 “법관은 법률 전문가이기 전에 인격자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머리만 좋은 젊은 법관에 대해 국민들이 미흡함을 느낀다고 지적한 것도 같은 의미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