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캔들의 제왕’ 도 결국 경제 앞에 무릎 꿇다
온갖 성추문과 부패 혐의에도 꿈쩍 않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가 결국 ‘경제’ 앞에 무릎을 꿇었다.
베를루스코니는 2008년 세 번째 총리직에 오른 이후 무려 51차례의 신임 투표를 치렀지만 끈질기게 버텨왔다.
자신의 호화별장에서 미성년자가 포함된 매춘부들을 불러 섹스 파티를 즐겼던 사실이 들통나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탈리아가 국가 부도 위기에 처하고 금융시장과 국제사회가 압박을 가하자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밀라노에서 건설업으로 돈을 모아 언론 재벌이 된 베를루스코니는 재력을 바탕으로 1994년 ‘포르자 이탈리아’라는 정당을 이끌고 총리직에 올랐다.
9개월 만에 물러났지만 2001년 5월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총리직에 복귀했다.
2006년 총리 자리를 잠시 내줬지만 2년 뒤 자유국민당을 결성해 총리 자리를 되찾았다.
당시 그가 이끄는 중도우파연합은 상원 315석 중 174석, 하원 630석 중 344석 등 과반 이상의 의석을 확보하는 탄탄한 지지를 기반으로 출발했다.
그는 재임 기간 내내 숱한 성추문과 비리 의혹을 몰고 다녀 ‘스캔들의 제왕’이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높은 지지율을 유지했다.
그는 현재 미성년자 성매매 및 권력 남용, 조세 포탈, 법정 위증교사 및 뇌물공여 등 3건의 재판에 걸려 있다.
축구광인 베를루스코니는 이탈리아 명문 프로축팀 AC밀란의 구단주이기도 하다. 그는 “나 말고는 이탈리아를 이끌 사람이 없다”는 발언을 자주 했다.
하지만 2008년 전 세계를 강타했던 금융위기와 막대한 공공부채 문제로 이탈리아가 경제적으로 흔들리자 그의 지지율도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지난 9월 이후 무디스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 피치 등 3대 신용평가사가 줄줄이 이탈리아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한 것이 결정타였다.
이후 시장은 이탈리아 국채 수익률을 7%에 근접할 정도로 끌어올리면서 압박의 강도를 높였다.
1999년 유로화 출범 이후 이탈리아 국채 수익률이 6% 후반으로 치솟은 것은 처음이다. 베를루스코니의 지지율은 20%로 내려앉았고 그동안 침묵을 지키던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조르지오 나폴리타노 대통령도 공개적으로 베를루스코니 정권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지난달에는 로마에서 20만명의 시위대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베를루스코니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리기 하루 전인 지난 2일 긴급 각료회의를 소집해 전면적 경제개혁안을 마련하려 했으나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이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등이 베를루스코니에게 사임 압력을 가했다.
결국 집권 연정 소속 의원들의 탈당이 이어지며 다수 의석이 사실상 무너졌고 베를루스코니는 사임을 표명할 수밖에 없었다.
베를루스코니는 자신의 비판 세력을 ‘공산주의자’ ‘테러리스트’로 불렀지만 결국 자신이 그렇게 신봉했던 ‘시장’의 압박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