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共感)’은 문학·철학·사회과학에서 어떻게 이해되고 적용될까?
가 기아에 시달리는 먼 나라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책임은 무엇인가?
이 문제를 모든 인간은 동일하게 취급되어야 한다는 시각에서 고찰하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
나는 이런 시각을 강한 사해동포주의로 보고 그에 대해 약한 사해동포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물론 약한 사해동포주의도 강한 사해동포주의처럼 하나의 도덕적 가치에 대한 주장이다.
약한 사해동포주의에서도 인간사의 옳고 그름은 민족과 지역에 상관없이 동일한 척도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다른 모든 조건이 일치한다면,에티오피아 농부가 겪는 기아와 폴란드 농부가 겪는 기아는 똑같이 나쁘다.
그러나 두 나라의 기아가 똑같이 나쁘다는 도덕적 판단이 누구를 먼저 도와야 할지를 선택하는 데 결정적이지 않다.
행위의 주체로서 나는 어느 한쪽을 먼저 도와야 하는 도덕적인 의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안에 대한 도덕적 판단과 그 사안에 대한 도덕적 행위의 이유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한다.
그 간극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어린이 실종 사건을 들기로 한다.
실종된 어린이가 어느 집 자식이건 상관없이 그 사건은 누구에게나 나쁜 일이다.
그러나 그 사건에 대해 사람들이 취하는 행동은 그들과 실종된 어린이 사이의 친소 관계에 따라 달라진다.
만일 내 자식이 실종되었다면 나는 모든 시간과 공력을 들여 자식 찾기에 전념해야 한다.
내게는 자식을 찾아야 할 강력하고도 절대적인 이유가 있다.
그 이유에는 본능적 욕망 이상의 도덕적 의미가 내포된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특수 관계 때문에 나는 자식을 찾아야 할 분명한 도덕적 이유를 갖는다.
실종된 어린이가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하여 그 어린이에 대한 내 도덕적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 자식에 대한 책임이 남의 집 자식에 대한 책임보다 훨씬 크다고 생각하는 것은 온당하다.
어린이 실종 사건은 어떤 경우든 똑같이 나쁘다고 보는 도덕적 판단과,실종된 어린이에 대한 친소 관계에 따라 발현되는 내 행동의 도덕적 이유는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그래서 일군의 의무들을 다른 일군의 의무들보다 엄격하게 우선시하자는 제안을 할 수도 있다.
국지적 의무와 지구적 의무가 갈등을 빚을 때마다 국지적 의무를 먼저 이행하고 나서 여력이 있다면 지구적 의무를 이행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제안은 논리적으로 그럴싸해 보여도 도덕적으로는 부적절하다.
이 제안에 따르면,자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입증만 된다면 타국민에게 무제한적 해악을 끼칠 수 있다는 주장이 용인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