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기간산업을 외국기업에 넘겨줘도 괜찮나'라는 문제를 놓고 미국과 유럽 대륙에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기업활동의 자유와 글로벌 개방경제를 보장해야 한다'는 원칙론을 강조하며 "외국기업에 넘겨줘도 괜찮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쪽에서는 "국가안보와 관련된 산업부문은 보호해야 한다"며 반대하고 있다.
이 같은 논란은 한마디로 말해 '자본의 국적(國籍)'을 둘러싼 논쟁이다.
이런 갑론을박이 '다국적(multinational)기업'이란 말이 탄생한 선진 경제권에서 벌어져 더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외국자본의 국내 기업 인수를 문제 삼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과 "그러다간 국부가 다 유출되고 장기투자가 가로막힌다"는 반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스페인 기업 인수전
독일 에너지 대기업인 에온(E.On)은 지난달 21일 스페인 1위 전력회사인 엔데사를 291억유로(33조4600억원)에 인수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이미 인수의향을 밝힌 스페인 가스내처럴의 조건(주당 21.2유로)보다 훨씬 좋은 제안(주당 27.5유로)이어서 스페인 정·재계를 화들짝 놀라게 했다.
딜로직에 따르면 에온의 인수 제안액은 유틸리티(전기 통신 등 공공재)산업 역사상 최대 규모다.
두 회사가 합병하면 시가총액 1120억달러(108조원) 규모의 세계 최대 에너지 회사가 탄생하게 된다.
스페인 정·재계는 반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자파테로 스페인 총리는 에온의 불프 베르노타트 CEO(최고경영자)와 만난 자리에서 "자국 에너지 산업은 스페인 기업이 보유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스페인 신문 엘문도는 자파테로 총리가 에온의 인수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고 보도했다.
총리가 사실상 개입할 정도로 중대 사안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어 스페인 정부도 외국 기업의 자국 내 기업에 대한 인수·합병(M&A)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호세 몬틸라 산업장관은 "이번 조치는 독일의 에온에 선택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고 말해 에온을 겨냥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스페인 정부는 작년 9월에 나온 가스내처럴의 인수안을 강력히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에너지 산업에서 스페인 대표기업을 만들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엔데사 이사회도 "에온의 인수안은 가스내처럴보다 분명히 더 좋은 것이지만 엔데사의 진정한 가치를 적절히 반영하고 있지는 않다"며 손사래를 쳤다.
상대 당사국인 독일은 이에 대해 "에온에 대한 스페인의 규제는 시장원리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 제소할 뜻을 분명히 밝혔다.
EU는 스페인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엔데사의 황금주(Golden Share)를 활용해 M&A를 막아서는 안 된다고 강력 경고했다.
황금주는 경영권 변동 등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주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특별주를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