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중심 세계관 선언…중세 神중심 세계관에 중지부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Cogito ergo sum)
데카르트가 '방법서설'과 '철학의 원리'에서 언급한 유명한 이 구절은 중세의 종말과 근대의 도래를 포고하는 철학적 선언으로 받아들여진다.
사유의 주체로서의 '나'를 전면에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신 중심적인 중세적 세계관에서 개인 중심적인 근대적 세계관으로의 이행을 보여주며,'사유'로 대표되는 합리적 이성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려 했다는 측면에서 중세적 신앙성과 결별하는 근대적 합리성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찰'의 표준 판본인 1642년 라틴어 재판본의 원제가 '제일철학에 관한 성찰(Meditationes de prima philosophia) 여기에서 신의 현존 및 인간 영혼과 신체의 상이성이 증명됨'이며 '제3성찰'에서 신의 존재를 논하고 있는 점,그리고 신의 존재가 물체는 현존하며 사유와 상이하다는 논증의 전제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중세적인 신의 그림자가 아직까지도 데카르트의 머리 위에 길게 드리워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연과학에 대한 새로운 신념 때문에 교황청과 갈등을 빚었던 갈릴레오의 사망 연도,'성찰'의 재판본 출판 연도,그리고 근대 자연과학을 완성한 뉴튼의 출생 연도가 모두 1642년이라는 것 역시 중세와 근대에 한 쪽 발을 각각 걸치고 있으면서 중세와 근대의 미묘한 긴장 관계를 노정하고 있는 데카르트의 위치를 말해주는 듯하다.
데카르트의 탁월함이 빛나는 곳,그리고 인류가 데카르트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대목이 바로 이런 중세와 근대의 긴장에 대처한 그의 현명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데카르트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음으로써 중세적 권위를 지키려 애쓰던 신학자와 철학자들을 달랠 수 있었다.
동시에 인간 영혼과 신체(혹은 물체)의 상이함,즉 정신과 물체의 이원론을 주장해 물질세계를 불활성인 물질 덩어리들의 무정한 충돌만을 아는 생명없는 장소로 만들어버림으로써 데카르트는 신학자들이 더 이상 물질 세계에 관심을 갖지 않게 만들었고,과학자들도 더 이상 철학의 눈치를 볼 필요없이 물질 세계의 연구에만 몰두하게 했다.
데카르트로 인해 근대과학의 탄생할 수 있었던 물리적 세계의 이론적 근거가 완성된 것이었다.
⊙ 원문읽기 유년기에 내가 얼마나 많이 거짓된 것을 참된 것으로 간주했는지,또 이것 위에 세워진 것이 모두 얼마나 의심스러운 것인지,그래서 학문에 있어 확고하고 불변하는 것을 세우려 한다면 일생에 한 번은 이 모든 것을 철저하게 전복시켜 최초의 토대에서부터 다시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이미 몇 해 전에 깨달은 바가 있다.
(중략) 내가 지금까지 아주 참된 것으로 간주해 온 것은 모두 감각으로부터 혹은 감각을 통해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데 감각은 종종 우리를 속인다는 것을 이제 경험하고 있으며,한 번이라도 우리를 속인 것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 편이 현명한 일이다.
(중략) 그래서 나는 이제 진리의 원천인 전능한 신이 아니라,유능하고 교활한 악령이 온 힘을 다해 나를 속이려 하고 있다고 가정하겠다.
또 하늘 공기 땅 빛깔 소리 및 모든 외적인 것은 섣불리 믿어 버리는 내 마음을 농락하기 위해 악마가 사용하는 꿈의 환상일 뿐이라고 가정하겠다.
나는 또 손 눈 살 피,어떠한 감관도 없으며,단지 이런 것을 갖고 있다고 잘못 믿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겠다.
나는 집요하게 이런 성찰을 견지하겠다.
이렇게 하면 비록 어떤 참된 것을 인식할 수는 없을지라도 거짓된 것에 동의하지 않을 것,또 저 기만자가 아무리 유능하고 교활하더라도 내가 속임을 당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은 적어도 내가 확실히 할 수 있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