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유전학에 물음을 던진 물리학자의 모험
애덤 스미스가 말한 노동 분업의 원리는 학문 세계에서도 그대로 통용된다.
한 분야의 전문가는 그의 학문 영역에만 집중하고,다른 전문가의 노작(勞作)은 이견 없이 그대로 존중하는 것이 일반 원칙이다.
심지어 프랜시스 베이컨은 체계적인 분업을 통해 학문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기까지 했다.
베이컨의 주장을 무시하고 싶더라도,근대 이후로 심화된 학문의 복잡성과 전문성은 르네상스 시대의 이상형인 전인적 인간의 출현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수백년 후인 지금에 태어났더라도 다재다능한 천재였을지 살짝 의문이 든다.
현대에는 협소한 한 분야의 전문가로 발돋움하기도 힘겨운 실정이다.
그런데 조지프 테인터가 '문명의 붕괴'에서 정리한 것처럼,지금까지 등장했던 무수한 문명이 사라지게 된 원인이 '복잡성과 한계수익 체감의 원리'라면,현대 사회의 복잡성은 뭔가 답답한 전망을 가지게끔 한다.
그러나 이 와중에 다음과 같은 서문으로 시작하는 책이 있다.
"과학자는 한 분야에 대해 완벽하고 철저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고,따라서 자신이 정통하지 않은 분야에 대해서는 글을 쓰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흔히 생각한다.
그것은 일종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여겨진다.
나는 이 책을 위해 내가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고귀한 지위(노블레스)를 기꺼이 포기하고 그에 따른 의무(오블리주)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나의 변론은 이러하다.
우리는 통일적이고 포괄적인 앎을 향한 강한 열망을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았다.
최고 교육기관인 대학의 명칭,유니버시티(university)라는 말 자체가 고대로부터 수많은 세기에 걸쳐 오직 포괄성을 가진 지식만이 완전한 신뢰를 받을 수 있었음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그러나 지난 100년 정도의 기간에 다양한 지식 분야들이 양과 질 모든 측면에서 성장하면서 우리는 이상한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
이제야 비로소 모든 지식을 하나의 전체로 짜맞출 준비가 되었다고 우리는 분명히 느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한 개인의 정신이 작은 전문 분야 이상의 지식에 정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되었다.
이 딜레마를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누군가 과감하게 오류를 범할 위험을 감수하고 사실들과 이론들을 종합하는 시도를 감행하는 것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바로 이것이 나의 변론이다."
한없이 축소 지향적인 현대에 맞서 폭 넓은 사고를 지향하자는 선전포고를 한 이 용감한 글은 에르빈 슈뢰딩거가 저술한 '생명이란 무엇인가'의 서문이다.
슈뢰딩거는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이론물리학자로서,파동이론으로 하이젠베르크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양자역학을 공고히 쌓아 올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