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의 정치 리스크 유로존 재정위기가 악화하는 상황에서 각국 정치 리스크가 세계 경제회복에 새로운 암초가 될 것으로 우려된다. 21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 세계 GDP(국내총생산)의 40%를 차지하는 미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 4개국을 비롯한 59개국에서 올해 선거가 치러진다. - 5월21일 연합뉴스
☞ 경제에는 경제 주체들의 ‘심리’가 큰 영향을 미친다. ‘경제 심리’는 달리 얘기하면 기업이나 가계가 갖고 있는 향후 경제에 대한 ‘기대’다. 미래를 밝게 보면 경제도 실제로 호황 쪽으로 흘러가고, 반대로 미래를 어둡게 보면 경제도 침체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경제 주체들의 기대가 소비나 투자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경기전망 낙관→소비·투자 증가→경기호황 또는 경기전망 비관→소비·투자 감소→경기 침체의 사이클을 그리게 되는 것이다. 진념 전 경제부총리가 틈만 나면 “경제는 마인드”라며 경제 주체들이 비관적 전망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경제 주체들의 기대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소득, 이자율(금리), 인플레이션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정치도 그 가운데 하나다. 경제학에도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이란 분야가 있는데 바로 정치와 경제의 상호관계를 연구하는 것이다. 18세기께 등장한 정치경제학이란 용어는 처음엔 경제학과 같은 의미로 쓰이다 오늘날엔 주로 좌파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고 있다.
정치와 경제의 관계는 대체로 정치가 안정적일 때 소비와 투자가 활기를 띠고 경제도 잘 돌아가게 된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반대로 정치가 불안정하면 경제도 불안정해지기 마련이다. 적지 않은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보듯 정부가 사유재산권을 보호해주지 않아 재산을 지킬 수 없고, 언제 전쟁이 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열심히 일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최근 다시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그리스 재정위기 사태도 정치적 리스크의 대표적 사례로 꼽을 수 있다. 그리스 집권 사회당은 5월 초 치러진 선거에서 참패했다. 득표 1, 2위를 한 신민당과 좌파연합(시리자)은 과반이 되지 않아 연립정부 구성에 나섰으나 실패하고 결국 6월 중순 다시 선거를 치러야 할 판이다.
게다가 좌파연합은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구제금융 지원 전제조건으로 내걸은 ‘긴축’에 반대하고 있다. 6월 재실시되는 총선에서 좌파연합이 집권해 긴축 반대를 공식적인 정책으로 추진하게 된다면 그리스의 국가부도(디폴트)와 유로존(유로화를 사용하는 17개국) 탈퇴 가능성이 크다. 정부 씀씀이를 줄여 국가 빚을 갚아야 한다는 구제금융 조건을 그리스가 거부하면 독일 등 EU 회원국들로서도 자국민을 달래가며 다른 나라를 지원하기 힘들 것이다. 그리스의 디폴트는 세계경제엔 2008년 가을 이후 본격화된 미국발 금융위기 못지않은 대형 악재다.
씨티그룹 HSBC 등 주요 투자은행(IB)들은 올해와 내년에 집중된 선거가 고실업과 저성장 환경아래에 있는 주요국들의 강력한 개혁추진을 어렵게 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은 최근 경제지표가 개선되고 있으나 11월 대통령 선거 및 상·하원 선거가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해 아일랜드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 6개 국가의 정권이 교체된 유로존은 국가위기 전개상황과 선거가 서로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했다.
또 한국 중국 동남아 등 아시아 신흥국들은 그동안 높은 성장률을 기록해 왔으나 최근 고령화 등에 따라 기업 효율성 및 노동 생산성 제고 등을 위한 새로운 정책 마련이 필요할 것이라며 아시아 신흥국의 선거는 높은 성장률 유지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밝혔다.
선거가 있는 해 정부와 집권 여당이 국민에게 허리띠를 졸라매고 고통을 분담하자고 호소하기란 힘든 게 현실이다. 그랬다간 선거에서 표를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요즘 유럽 재정위기발 세계 경제위기는 세계 정치의 위기, 곧 정치 지도력의 부재에서 비롯됐다고도 볼 수 있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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