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글생글은 이번호부터 한국경제신문에서 연재중인 경제사상사 시리즈를 게재합니다. 이 시리즈의 필자인 민경국 강원대 교수는 시대를 꿰뚫어본 경제학자들의 삶과 사상을 조명하고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역사적 사례들을 통해 오늘날의 정치·경제적 현실과의 관련성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또 경제사상의 흐름을 다양하게 살피기 위해 자유주의·반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삶을 함께 소개합니다.
(1) 자유주의 '수호자' 하이에크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20세기 가장 위대한 자유의 대변인’이라고 칭송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뒤 오스트리아 빈대 법학부에 입학했다. 커리큘럼이 자유로워 법학은 물론 경제학, 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를 두루 공부할 수 있었다. 박사과정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청소년기에는 심정적 사회주의자였지만 은사인 루트비히 폰 미제스를 통해 확고한 자유주의가 된 하이에크는 경기변동이론부터 시작했다. 경기불황은 신용의 과잉팽창으로 야기된 인위적 붐의 불가피한 현상이며 왜곡된 생산구조가 정상화되기 위해 필연적으로 통과해야 할 과정인데, 이때 불황의 해법으로 정부지출이나 통화를 늘리면 그 과정이 치명적으로 방해받는다는 오스트리아 학파의 이론을 제시했다. 이 이론에 공감한 런던대는 1931년 ‘케인스의 물결’(정부가 경제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이론)을 막기 위해 하이에크를 불렀다.
그러나 순수경제이론 연구는 하이에크에게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좁은 경제학으로는 이념 전쟁에서 자본주의를 수호하는 데 불충분했다. 그의 경제학은 심리학 철학 법학 윤리학 등 학제융합적으로 발전했다. 그래서 심오하고 원대하다.
하이에크가 우리에게 준 자유주의 유산은 ‘세상을 보는 방식’이다. 이는 광범위한 이론적, 철학적, 공공정책적 귀결을 내포하고 있다. 우선 경제 문제는 희소한 자원 배분이 아니라 ‘지식의 문제’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들이 서로 분업·협력하고 교환할 수 있으려면 그들은 서로에 관한 지식을 가져야 하는데 그런 지식은 극히 제한돼 있다. 인간의 두뇌로는 접근이 불가능한 거시세계로까지 분업과 협력을 확대하려면 우리의 능력을 초월하는 지식 소통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게 바로 시장사회만이 가능한 가격구조이며 시장은 거대한 소통체계라는 것이다.
하이에크는 법 도덕 관습 자유 등의 존재의미도 지식의 문제를 경감시키는 역할에서 찾고 있다. 전지전능한 정부가 존재한다면 자유도 필요 없고 시장과 사유재산제도, 법이나 도덕규칙도 필요 없다. 계획경제와 시장 통제는 실패할 수밖에 없고 실패의 결과가 치명적인 이유가 시장경제가 아니고는 해결할 수 없는 지식의 문제 때문이다. 이로써 하이에크는 정부는 부와 번영을 창출할 지적 능력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면서 정부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활동을 가로막는 규제를 풀고, 작은 정부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50~1960년대에는 ‘문화진화’를 연구한 하이에크가 우리에게 준 유산은 시장사회에 대한 ‘자생적 질서(spontaneous order)’의 시각이다. 그는 언어나 관습처럼 시장경제 속성은 자생적 질서라는 것을, 시장을 인간이 계획해 의도적으로 만든 질서로 보는 버릇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시장에는 질서를 잡는 실체가 없다고 해도 스스로 질서가 생겨나고 유지되는 것은 개개인들의 행동들이 서로 조정되는 과정과 그들의 잘못된 행동이 처벌받는 통제 과정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은 새로운 지식이 창출되고 성공적인 것이 확산되는 등 정부가 할 수 없는 풍요와 부를 창출하는 과정이다. 이로써 하이에크는 정부가 아닌 시장이 경제를 구한다는 것을, 시장은 빈곤·실업·불황이나 저성장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자생적 질서라는 것을, 따라서 풍요의 원천은 정부가 아니라 사유재산권과 경제자유라는 것을 또렷하게 보여줬다.
그럼에도 시장의 자생적 질서에 정부가 개입하면 스태그플레이션을 만들어 낼 뿐이라고 경고하면서 빈곤 실업 저성장 등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는 경제문제, 심지어 1930년대 대공황까지도 정부 개입의 탓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따라서 하이에크의 사상에서 국가가 할 일은 많지 않다. ‘자유의 법’을 통해서 사적재산권과 경제자유를 보호하는 법치주의, 그리고 엄격한 ‘선별적 복지’를 실현해야 한다. 국가가 그 이상을 넘어서 뭔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이는 ‘치명적 자만’이라고 경고하면서 그 같은 제목의 책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93세의 일기로 세상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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