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투스의 참모 ‘아그리파’ 사재 털어 수로 보수…정치 안정 이끌어
로마는 하루아침에 지어진 것이 아니다.
100만명이 모여 사는 거대 도시 로마,유럽과 북아프리카의 광대한 지역을 포괄하는 제국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물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50m 높이의 3단 아치 구조를 한 프랑스 남부의 퐁뒤가르 수로교(水路橋)나 영국의 배스에 있는 로마목욕탕 같은 것들은 상하수도 기반시설이 제국 전체에 걸쳐 얼마나 잘 갖춰져 있었는지 보여준다.
로마시의 상하수도 시스템은 1000개가 넘는 분수반(噴水盤)과 급수전(給水栓),11개의 거대한 제국 목욕탕을 비롯해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공중목욕탕과 사설 목욕탕,하수를 모아 티베르 강에 쏟아버리는 지하 하수구를 포함한다.
로마인들은 일찍부터 11개의 수로를 건설해 깨끗한 물을 로마 시내로 풍부하게 공급했다.
이 물은 산속의 샘에서 나온 물을 모아 정화한 다음 로마까지 흘러오도록 만든 것이다.
가압 모터 같은 것이 없던 당시 먼 거리로 물을 보내는 데에는 순전히 중력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수원지로부터 로마 시내까지 줄곧 일정하게 경사가 진 수로를 건설해야 했다.
수로 가운데 가장 긴 것은 아쿠아 마르시아였다.
기원전 140년께 지어진 이 수로는 90㎞나 떨어진 아니오 계곡에서 로마시 동쪽 지역으로 물을 공급했는데,물이 맑고 차가운 것으로 유명했다.
이 수로는 로마시의 팽창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로마가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넘어가던 시대인 기원전 33년,마르쿠스 아그리파가 이 수로를 본격적으로 수리한 것은 정치적으로도 아주 중요한 의미를 띠었다.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벽돌의 도시 로마를 물려받아 대리석의 도시로 넘겨주었다"고 자랑한 바 있다.
그런 업적을 이루는 데 실제적인 공헌을 한 인물이 바로 아그리파다.
그는 군 사령관으로 전투에 참여하다가 기원전 34년에 로마로 귀환한 후 공공시설물과 축제를 관장하는 조영관(造營官 · aediles) 직을 맡게 되었다.
당시 계속되는 전쟁과 정치적 갈등으로 로마의 기반시설은 형편없는 상태로 방치돼 있었다.
가장 긴급한 문제는 상하수도 시스템이었다.
조영관이 된 후 그는 1년 이내에 아쿠아 마르시아를 비롯한 수로 3개를 보수하고 1개를 새로 건설해 물 공급량을 크게 늘렸다.
또 700개의 수조,500개의 급수반,130개의 물탱크를 만들었고,공중목욕탕도 개장했다.
이런 일들은 흔히 자신의 사재를 털어서 했다.
위대한 인물은 자신의 희생을 통해 공공의 선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 로마 시대의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로마 공화정 당시 최고의 직위였던 집정관(consul)까지 지낸 다음 그 하위직인 조영관을 맡는다는 것부터 흔치 않은 일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