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비경쟁의 경제학
고등학교 한 반의 학생들은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공부 잘 하는 아이와 못 하는 아이,얌전한 아이와 노는 아이,말 많은 아이와 조용한 아이….
그런데 얌전하고 공부만 하는 학생은 어른들에게 칭찬받겠지만 또래집단에선 '범생이'로 놀림감이 된다.
이런 역설적 규범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있는 일이 아니다.
'범생이'를 미국에서는 'nerd'라고 부른다.
nerd는 '(운동이나 이성교제에 숙맥인) 바보,샌님'이란 의미다.
왜 그럴까?
학생들은 성적도 올려야 하고,어른 말씀도 잘 듣도록 교육받는다.
하지만 밤잠 줄여가며 공부하고,사춘기 반항심 누르는 일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모두가 공부벌레처럼 판다면 성적이 오르기도 힘들다.
이런 형태의 소모적 경쟁을 경제학에선 국가 간 군비 경쟁에 비유해 '위치적 군비경쟁'(positional arms control)이라고 부른다.
군비경쟁의 경제학을 통해 세상사를 풀어보자.
⊙위치적 외부효과와 군비 통제 1980년대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은 군비 경쟁이 한창이었다.
서로 더 많은 핵무기,더 가공할 미사일,더 우수한 전투기 등을 만드는 데 행여 뒤질세라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다.
결국 소련은 군비 경쟁의 후유증으로 1990년대 들어 급속히 몰락했다.
미국도 군비 부담으로 막대한 빚을 져 지금도 쌍둥이 적자(재정적자·무역적자)로 고민하고 있다.
이처럼 자신의 순위(상대적 위치)를 향상시키기 위한 모든 수단들이 반드시 경쟁자의 순위를 하락시키는 상황을 '위치적 외부효과'라고 한다.
2등이 1등 되면,1등은 2등이 되는 상황이다.
이런 경우에 사람들은 순위를 높이려고 앞다퉈 투자지출을 늘리지만 서로 상쇄돼 아무 효과가 없는 소모적 경쟁이 벌어진다.
바로 '위치적 군비 경쟁'이다.
미·소 군비 경쟁처럼 과열·과잉·낭비적 경쟁으로 치러야 할 비용은 점점 불어나는데 얻을 수 있는 효용은 제한적인 경우다.
군비 경쟁이 과열되고 전체 이익에 기여하지 못할 때 경쟁을 자제시키는 사회적 규범이나 법적 규제장치로서 '군비통제 협약'이 생겨난다.
위치적 외부효과와 군비 경쟁의 개념은 지난 6월 평가원 모의고사 언어영역(19~22번)에 출제된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