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효용
사람들은 좀체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 첫사랑은 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까? 지나간 것은 모두 아름답다는 추억의 아련함 탓일까, 풋풋한 시절 서로 느꼈던 참신함 때문일까? 하지만 첫사랑도 길어지면 습관적인 만남으로 전락할 수 있다. 이렇듯 참신함과 식상함의 차이는 왜 생길까?
사람들은 '나중'보다 '처음'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전인미답의 경지에 도달한 각종 최초 기록 보유자를 기억하고, 뭐든 신기종이 나오면 먼저 써봐야 직성이 풀리는 얼리어댑터(early adopter)도 있다. 사람의 바람(욕구)은 제각각이고, 바람이 이뤄졌을 때 느끼는 만족감(효용)도 천차만별이다. 값비싼 진주목걸이도 돼지 목에는 아무 것도 아니고, 말 편자도 개 발엔 쓸모 없듯이. 하지만 수십 수백번 반복되는 유행가나 허구한 날 밥상에 오르는 반찬이 마냥 좋을 리 없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바로 오늘의 주제인 한계효용(marginal utility) 체감의 법칙이다. 우리 삶의 선택과 선호에 깊숙이 영향을 미치는 '한계효용의 효용'을 생각해보자.
◆두 번째 첫사랑은 없다 이탈리아 영화 '시네마 천국'에서 주인공 토토는 사춘기 때 첫눈에 반한 엘레나를 30년 동안 가슴에 품고 산다. 황순원의 '소나기'에서도 잔망스런 소녀는 죽어가면서 입은 옷(소년에게 업혀 진흙물이 든 분홍색 스웨터) 그대로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긴다. 미국에선 실제 70대 노인이 소년시절 첫사랑을 60년 만에 찾았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투게르네프의 소설 '첫사랑'이 있고, 김혜수가 주연한 한국영화 '첫사랑'도 있다. 소설로 씌여졌다가 연극, 영화로도 만들어진 '황태자의 첫사랑'도 빼놓을 수 없다(같은 제목의 국내 TV드라마도 있다).
이렇듯 첫사랑은 무수한 문학작품, 영화, 드라마, 노래 등의 주제가 됐다. 첫키스도 비슷한 것 같다. 만해 시인은 첫 키스의 추억을 '날카롭다'고 표현했다. 이는 프로야구에서 MVP는 해마다 될 수도 있지만 신인왕은 평생 한 번 뿐이듯이 기억 속에 '날카롭게' 각인될 수밖에 없다. 경제용어로 말하면 첫사랑, 첫키스의 한계효용은 거의 무한대에 가깝다. 다시 올 수 없기에, 즉 대체재가 전혀 없이 희소하기 때문이다.
◆참신함의 끝은 식상함 우리 속담에도 '맛있는 음식도 늘 먹으면 싫다''듣기 좋은 노래도 오래 들으면 싫다'처럼 한계효용의 체감을 비유한 것들이 있다. 좋은 것도 한두 번이지, 횟수를 거듭할수록 추가되는 비용이 추가적 편익을 초과한다는 의미다.
뭐든 처음엔 참신하지만 자꾸 반복되면 곧 싫증이 난다. 초기 아이디어가 돋보였던 조폭 코미디류의 영화도 끝없이 쏟아지는 아류에선 식상함만 남는다. 1990년대 유행했던 공일오비의 노래 '아주 오래된 연인'의 가사를 살펴보자. "저녁이 되면 습관적으로 전화를 하고, 관심도 없는 서로의 일과를 묻곤 하지. (…) 처음에 만난 그 느낌, 그 설레임을 찾는다면 우리가 느낀 싫증은 이젠 없을 거야~." '설레임'은 시간이 흘러 '습관,싫증'으로 바뀌었다.
이와 달리 한계효용이 체감하는 것이 아니라 균등하다는 주장도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한 양복회사는 "막 사입어도 1년된 듯한 옷, 10년을 입어도 1년된 듯한 옷"이란 광고카피로 화제를 모았다. 이는 머리를 깎은 직후의 생뚱맞음(생경함)도, 오래 묵어 지겨움(식상함)도 없앴다는 뉘앙스를 전해준다.
◆'한계' 모르고 경제를 말하지 말라 오늘날 미시경제학 교과서의 원조격이 1890년에 초판이 나온 알프레드 마셜의 '경제학원론'이다. 마셜은 한계이론을 세웠고, 존 메이너드 케인스 등 현대의 경제석학들을 두루 가르쳤으며, '뜨거운 가슴, 찬 이성'이란 명언으로 경제학자가 가야 할 길을 갈파한 인물이다.
마셜은 한 가지 요인을 검토하는 동안 다른 요인들을 모두 '울타리'에 가둬버리는 분석체계를 고안해냈다. 즉, 라틴어로 '세테리스 파리부스(ceteris paribus:다른 조건이 같다면)'는 요즘 미시경제학 교과서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경제학적 시간(장기와 단기), 수요ㆍ공급법칙, 한계효용, 탄력성, 대체재 등 미시경제학의 기본개념과 명목ㆍ실질이자율의 개념까지 정립했다. 이로써 마셜은 경제학을 역사학이나 도덕철학에서 독립시키는 데 주력했다. '그래야 하는 이상'(규범경제학)이 아닌 '실제 그런 이유'(실증경제학)를 연구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