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경제를 이끌어왔던 제조업이 중병을 앓고 있다. 조선 철강 석유화학 IT(정보기술) 자동차 해운 등 거의 전 산업 분야에서 일본의 반격과 중국의 거센 추격 등으로 설자리가 좁아져가는 추세다. 문제는 이런 흐름이 구조적이라는 데 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대한민국 호(號)가 선진국 문턱에서 좌초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말뫼의 눈물’은 우리 경제가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단어다.
스웨덴은 20세기 세계 조선시장을 주도하던 최고의 조선국가였다. 스웨덴의 조선산업을 이끌던 메카가 바로 말뫼시다. 스웨덴 남부 스코네주에 자리잡은 항구 도시 말뫼는 조선업으로 명성을 떨쳤고, 그 중심에 조선업체 코쿰스(Kokums)가 있었다. 코쿰스는 한창 호황이던 1973년 높이 138m에 무려 1500t을 들 수 있는 초대형 크레인(코쿰스 크레인)을 만들었다. 이 ‘말뫼의 크레인’은 스웨덴의 자존심으로 통하며 75척의 배를 건조했다. 하지만 2003년 현대중공업에 단돈 1달러에 팔리는 신세가 됐다. 1980년대 들어 한국과 일본 등이 세계 조선시장을 휩쓸기 시작하면서 코쿰스가 경쟁력을 잃고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스웨덴 국영방송은 해체된 크레인이 울산으로 떠나던 날 ‘말뫼가 울었다’는 보도와 함께 장송곡을 틀었다고 한다. 현대중공업은 ‘말뫼의 크레인’ 인수를 계기로 세계 조선업계의 최강자로 올라섰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말뫼의 눈물’과 유사한 ‘울산의 눈물’이 재현될 조짐이다. 말뫼의 크레인이 현대중공업으로 온지 13년이 흐른 지난 1일, 현대중공업은 울산 온산 2공장의 가동을 중단했다. 주문이 뚝 끊기면서 해양플랜트 블록을 만들던 공장을 돌리기 어려워져서다. 20만㎡에 달하는 공장은 적치장으로 쓰기로 했다. 최길선 현대중공업 회장은 “도크(배를 만드는 작업장)가 빈다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눈앞에 닥쳤다”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도 불과 수년 전 3년치 일감을 쌓아두고 일했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부터 수주가 뚝 끊겼다. 경남 거제시의 옥포조선소 4번 도크는 벌써 일감이 없어 비어 있다. 삼성중공업을 포함한 조선 3사의 올 신규 수주는 현대가 달랑 3척에 그칠뿐 대우와 삼성은 올들어 지금까지 사실상 한 척의 배도 수주를 못했다. 그 사이 중국과 일본은 세계 조선 시장을 싹쓸이하는 중이다. 국내 조선 3사가 지난 한해 기록한 적자는 무려 8조5000억원에 달했다.
이렇게 되자 조선업종에서 실업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대우조선은 2019년까지 외부 인력 포함 1만2000명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대우조선 총 근로자 수(4만2000명)의 30%에 해당한다. 대우조선해양의 현시한 노조위원장은 “지난해 거제에서만 40개가 넘는 조선 관련 중소기업이 폐업했으며 올해 3월까지도 수십 개의 업체가 문을 닫았다”며 “이대로라면 최대 2만명이 해고될 수 있다”고 전했다. 조선업의 추락은 울산, 거제뿐만 아니라 경주시와 포항시, 영암군 등 조선 기자재업체들이 밀집한 타 지역에도 큰 충격을 주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2014년 1678개 비금융 상장사 중 ‘좀비 기업’(영업이익으로 빚낸 이자도 못갚는 기업)은 258개로 2013년(58개사)보다 4배 이상 늘었다. 조선업은 좀비 기업이 가장 많은 업종 중 하나다. 2014년 기준 조선업종 상장사 중 34.6%가 만성적 한계 기업이다. 철강·에너지 상장사 중 좀비 기업은 25%에 달한다.
선거는 끝났지만 우리 경제의 상황은 오히려 어려워졌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졌으며, 선거 과정에서 여당에서조차 “구조조정을 못하게 하겠다”는 ‘포퓰리즘’ 발언이 난무했다. 회사가 언제 망할지 모르는 데도 현대중공업 노조는 올해 단체협상에서 △기본급 6.3%(9만6712원) 인상(호봉 승급분 별도) △실적과 상관 없이 성과급 250% 고정 지급 △자연 감소 인원만큼 신입사원 충원 △노조 추천 사외이사 선임 △우수 조합원 100명 이상에 해외 연수 기회 부여 등을 요구조건으로 내걸었다. 우리 기업들은 그동안 수없이 많은 어려운 일을 당하고도 오뚝이처럼 딛고 일어났다. 위기에서 하나로 뭉쳤던 덕분이다. 하지만 회사가 어찌됐든 자기 밥그릇만 챙기려는 ‘대기업 노조병’이 만연한 지금 예전처럼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말뫼의 눈물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31일 스웨덴의 조선업 도시 말뫼에서 일어난 ‘눈물의 사건’을 거론하며 공급과잉 산업에 대한 구조조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윤 전 장관은 이날 금융감독원 임직원을 상대로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공짜 점심은 없다(Freedom is not free, No free lunch)’를 주제로 특별강연을 하면서 이처럼 말했다. -3월31일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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