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아시아는 은덩이·동아시아는 별보배고둥이 화폐 시초…로마제국은 '질 낮은 화폐'가 인플레 부추겨 멸망했죠
경제

서아시아는 은덩이·동아시아는 별보배고둥이 화폐 시초…로마제국은 '질 낮은 화폐'가 인플레 부추겨 멸망했죠

김은찬 기자2019.08.22읽기 5원문 보기
#화폐의 탄생#물물교환#인플레이션#로마 제국의 화폐 정책#통화 공급#은 함유량 감소#진나라의 화폐 통일#반량전

새로 나온 책 읽기

돈의 흐름으로 보는 세계사 (1) 화폐의 탄생과 제국의 역사

약 4000년 전, 세계사의 첫 번째 무대가 된 서아시아에서 황허강 중류지역에 이르는 건조 지대의 곡물을 생산하는 농지 주변이나 초원에는 보리를 생산하지 못하는 목축민이 많이 살았다. 이들은 보리를 얻지 못하면 생존할 수가 없었기에 점차 농민과 목축민 사이에 교환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넓은 지역에서 물물교환이 성행하자, 이를 도와주는 ‘상인’이 출현했다. 상인은 여행을 하며 양자를 중개했으므로, ①소지하기 편하고 ②부패하지 않아 ‘가치’가 안정되어 있으며 ③농민과 목축민 모두 받기를 거부하지 않는 ‘교환증’이 필요해졌다. 이에 등장한 것이 바로 ‘화폐’다.최초의 돈이 금 아니라 ‘은’이었던 이유

미야자키 마사카쓰(宮崎正勝)

전 홋카이도교육대 교수로 저서로는《하룻밤에 읽는 세계사》《물건으로 읽는 세계사》《하룻밤에 읽는 근현대 세계사》《흐름이 보이는 세계사 경제 공부》등이 있다. 서아시아에서는 은조각(은덩이)을, 황허강 중류 지역에서는 별보배고둥 껍데기를 화폐로 사용했다. 그런데 어째서 은덩이와 별보배고둥 껍데기가 화폐로 선택된 것일까?금속을 뜻하는 ‘메탈(metal)’은 그리스어의 ‘메탈론(mtallon)’에서 파생한 말이나, 본래 ‘달’을 의미했다고 한다. 서아시아에서 ‘달’은 차고 이지러짐에 따라 ‘시간’의 경과를 알려주는 신비한 존재이자 영원성의 상징이었고, 사람들은 금속 중에서 은을 달과 가장 가깝다고 여겼다.

이렇게 은덩이는 외양과 희소성이 ‘가치 있다는 환상’을 만들어냈고, 점차 교환 시에 물품의 ‘교환증’으로서 물품순환을 관장하게 되었다. 한편 동아시아에서는 남중국해에 서식하는 자그마한 별보배고둥 껍데기가 화폐의 역할을 했다. 별보배고둥 껍데기는 여성의 생식기와 출산을 떠오르게 하는 까닭에, 대가족이 중심이 되어 조를 재배했던 황허 문명에서는 일족의 번영, 재화 축적, 풍요를 상징하는 행운의 물품으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 유라시아의 동서를 막론하고, 화폐의 역할을 하는 물품에는 사람들이 납득될 만큼 충분한 종교성, 신비성, 주술력이 필요했다.

값싼 동전을 대량 발행해 주도권을 잡은 시황제황허강 유역에서는 처음에 조개껍데기를 화폐로 사용했지만, 기원전 221년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후에는 조개껍데기 화폐의 계보를 이어받은 값싼 동전이 대량으로 주조되어 통화로 쓰였다. 광활한 중국에서는 위조 화폐를 방지하기가 어려웠던 탓에, 값싼 동전을 대량으로 발행하는 편이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신의 대리인을 자칭한 시황제는 문자, 도량형, 차축의 폭등을 통일하면서 화폐까지 통일해 통화를 황제의 지배하에 놓으려 했다. 진나라의 통화는 원 한가운데에 구멍이 뚫린 ‘반량전(半兩錢, 1냥이라는 무게의 반)’이라는 무게를 나타내는 동전(동화)으로, 황제의 명령에 의해 발행되었다.

하늘에 있는 신의 대리인(천자)인 시황제가 제국 경제의 총괄자로서 권력을 휘둘렀던 것이다. 단, 진나라는 그 역사가 지극히 짧은 데다 광활한 지역을 지배한 탓에, 예부터 각지에 유통되었던 화폐 또한 여전히 사용되었다. 중국 화폐의 기본 특색은 뛰어난 주조 기술을 사용해 값싼 동전을 대량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민중의 생활 깊숙한 곳까지 화폐가 침투한 덕분에, 국가가 직접 백성을 지배할 수 있었다. 로마 제국, 은화에 은 함유량 줄여 ‘자멸’화폐는 제국이 통치를 강화하는 데도 기여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몰락하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1세기 말 로마 제국의 정복 활동은 일단락되지만, 시민권을 가진 몰락한 병사의 자손을 부양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재정 지출이 불가피했다. 오늘날로 치면 사회보장비가 불어난 셈이다. 하지만 원정을 멈춰 전리품이 끊긴 데다, 기원전 167년에 접수한 마케도니아의 은 광산에 매장된 은이 고갈되자 돈을 지급하기가 어려워졌고, 만성적인 재정난이 이어졌다. 이런 까닭에 로마 제국은 주화 공급량을 늘리려 은 함유량을 줄였고, 그 바람에 주화의 질은 점점 더 떨어졌다.

로마의 첫 번째 황제 아우구스투스(Augusus)가 발행한 은화와 비교해보면, 제국의 영토가 최대로 확장되었던 트라야누스(Trajanus) 황제 때는 15% 감소, 공중목욕탕을 만든 일로 유명한 카라칼라(Caracalla) 황제 때는 50% 감소하는 식으로, 은의 함유량을 순차적으로 줄여나갔다. 처음에는 순은에 가까웠던 로마의 은화는 3세기 말이 되자 은 함유량이 고작 5%밖에 되지 않는 주화로 변함으로써, 화폐 가치가 하락해 갖가지 물가가 상승했고, 로마의 경제적 힘이 무너지면서 정치적으로도 분열되어갔다. 결국 로마 제국은 극심한 인플레이션 때문에 자멸한 셈이었다.

글 싣는 순서①화폐의 탄생과 제국의 역사②대항해 시대와 돈의 흐름③동전 시대에서 지폐 시대로④달러, 세계 돈 기준이 되다⑤통화가 움직이는 세상김은찬 한경BP 에디터 k_eunchan@hankyung.com

AI 퀴즈

이 기사로 1분 퀴즈 풀기

객관식 3문항 · 즉시 채점

광고Google AdSense — 728×90

🔗 본문 속 개념

📚 함께 읽으면 좋은 기사

2006 주목! 이사람

'버냉키, FRB 새 선장… 금리행보는' 등

벤 버냉키 미국 FRB 의장이 연방기금금리 결정을 통해 세계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이며,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한 추가 금리 인상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구글, 도요타, 애플 등 글로벌 기업들의 새로운 지도자들과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 중국 중산층 등 '빅5'가 2006년 세계 경제의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2006.01.03

달러의 경제학
커버스토리

달러의 경제학

달러는 세계 금융·통화의 중심으로서 국가 부의 척도이자 국제 거래의 기본 결제 수단이며, 환율 변동을 통해 각국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국가 예산 수립과 기업 경영 계획 수립 모두 달러 환율 전망을 전제로 하므로, 달러를 이해하지 못하면 경제 흐름을 파악할 수 없다. 유로화 출범 등으로 달러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지만, 국제경제 질서가 달러 중심으로 유지되는 한 달러의 영향력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2007.01.17

"68혁명은 후대에 빚만 남겨줬다"
커버스토리

"68혁명은 후대에 빚만 남겨줬다"

68혁명을 지지하는 세대는 인간 자유와 복지 증진의 성과를 강조하지만, 실제로 프랑스 청년들은 장기 경제 침체, 높은 실업률, 인플레이션 등으로 인해 심각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68혁명 세대의 추상적 개념주의 전통을 거부하고 실행과 노동을 강조하는 언어 사용으로 국민 지지를 얻으며 새로운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2008.04.30

넘치는 돈과 위기불감증이 금융위기 확산 시켜
커버스토리

넘치는 돈과 위기불감증이 금융위기 확산 시켜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촉발된 금융위기가 글로벌 저금리와 넘쳐나는 유동성 속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그린스펀 전 FRB 의장이 금융위기 때마다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며 '위기 불감증'을 심어놓았고, 글로벌 금융시장의 통합과 파생금융상품의 발전으로 신용 경색이 국경을 넘어 즉시에 전 세계로 전염되는 새로운 형태의 위기가 되었다.

2007.08.22

'존경받는 CEO 3위'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 회장

GM구원 소방수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 회장은 위기 상황에서 단호한 결단력을 발휘하는 경영자로, 미쉐린과 르노에서의 성공적인 구조조정을 거쳐 닛산을 2년 만에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시켰다. 그는 "말한 것을 반드시 실행한다"는 철학으로 직원들의 동기를 강화하고, 과감한 비용 절감과 혁신적 개혁을 통해 '코스트 킬러'라 불리며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CEO로 평가받고 있다.

2006.01.08

광고Google AdSense — 728×90 또는 970×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