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이란 이름의 정체성 ⊙ 민족은 구시대의 유물인가
인류가 진보해온 역사를 거칠게 언급한다면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도 세계화된 사회라고 말할 수 있다.
어느 특정 지역에서 일어난 현상이 그곳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눈 깜짝할 사이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엉뚱한 곳에까지 미치는 것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지금 겪고 있는 경제 위기만 하더라도 뉴욕에서 시작된 일이 어느 새 유럽으로,그리고 아시아로 급속하게 번지는 것을 보면 현대인이 살아가는 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도 세계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금융 위기를 경험한 탓에 잠시 주춤한 면도 있지만 세계화는 실상 적지 않은 인류가 지향해오던 삶의 조건이기도 했다.
비판적인 목소리도 거세지만 지금도 수많은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자유무역협정의 경우 세계화를 지향하는 대표적인 규약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 · 경제적인 경계를 무너뜨리고 자본을 자유롭게 이동하게 하며 투자의 장벽을 과감히 제거해 경제를 활성화시키자는 것이 세계화의 가장 기본적인 메커니즘인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회 문화적으로도 세계화는 진행 중이다.
소위 '글로벌 스탠더드'는 경제적인 분야만이 아니라 문화 · 예술의 분야에서도 적용되는 것이어서 자국의 문화 · 예술산업이 글로벌 환경에서 널리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각국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어느 때보다도 높은 영어에 대한 관심 역시 이러한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정치 · 경제적인 영역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세계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민족과 국가의 경계가 희미해졌을 뿐 아니라 그것은 과거처럼 개인의 자유로운 사고와 행동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민족주의'를 운운하는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폐쇄적이며 배타적인 이데올로기에 대한 향수를 표현한 것으로 이해될는지도 모른다.
⊙ 말과 글의 혼란에 빠지다
경제적인 풍요와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인해 1990년대 이후 한국사회는 민족이라든지,이념과 같은 공동체적인 가치보다는 개인을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소설에서도 어렵지 않게 감지된다.
민족문학적 주제의식은 약화되고 대신 개인의 사적 경험을 중시하는 소설들이 대거 출판되었고 또 읽혀나갔다.
세계화를 추구하며 개인을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민족적 정서가 이전처럼 폭넓은 공감을 얻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문학이론가들은 근대소설의 양식이 종말을 맞은 게 아니냐는 우려를 표명한 적이 있었고 몇몇 소설가들은 글쓰기의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한편으로 자신들의 고뇌를 솔직하게 다룬 소위 소설가 소설들을 창작하기에 이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