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욕망의 그늘속에서 생명의 존엄성을 일깨우다
⊙ 근대화와 환경위기
오늘날 환경위기는 인간 삶의 생존마저 위협할 만큼 그 정도가 심각해졌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근엄한 자태를 자랑하던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이 녹아내리고 있고,그린란드를 뒤덮었던 얼음마저도 그 자취를 잃어가고 있다.
해수의 기온이 상승하면서 몇 해 전 재즈의 본고장 뉴올리언즈를 초토화시킨 카트리나 같은 대형 태풍이 세계의 수많은 도시를 위협하고 있고,생태계는 교란되어 우리나라 동해에서 겨울철 별미로 잡혔던 도룩묵이나 양미리 같은 어종들은 자취를 감춰가고 있다고 한다.
노무라입깃 해파리나 사막의 메뚜기처럼 다른 생물들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개체군이 무섭게 늘어가는 것도 문제이다.
이러한 총체적 환경변화는 결국 인간 삶 자체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이,이러한 변화는 성찰과 반성 없이 진행된 근대화와 산업화가 가져온 부산물이다.
자본주의적인 대량생산은 자원을 무분별하게 활용하면서 온실가스를 비롯한 각종 유해물질을 쏟아냈고 이는 환경을 오염시키는 결정적 주범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정신사적인 맥락에서 보면 '근대화'는 주체와 타자를 구분하여 주체 중심의 세계를 형성하게 만들었던 근대 철학의 산물로 볼 수 있다.
데카르트 이후의 근대철학은 세계의 중심에 인간 주체를 위치시키고,자연을 비롯한 그 이외의 것들을 타자화시키는 것이 그 본질이었다.
근대 이전에 자연은 신비롭고,경이롭고,범점할 수 없는 숭배의 대상이었지만 근대세계에서의 자연은 설명과 예측이 가능한,그리하여 인간 삶을 위한 도구와 수단의 의미만 지닌 물화된 대상으로 변모하고 만다.
자연에 속한 모든 것들은 자본주의적 원료가 되었고 인간을 제외한 뭇 생명의 가치는 무시되었던 것이다.
불행하게도 근대문명이 채 500년도 되기 전에 인간은 전에 없이 위협적으로 변모한 '자연'이 결국 설명 불가능하고,예측할 수 없는 영역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중세의 주술과 마법으로부터 벗어나 과학적 도구로 자연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는 인간의 자만은 생각보다 일찍 무너져 버렸고,자연은 근대 이전의 두려움과 공포,경외의 대상으로 다시 인간 앞에 나타나게 된 것이다.
황순원의 「어둠 속에 찍힌 판화」는 이러한 현실 앞에 인간이 자연과 뭇 생명들에게 어떠한 태도와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를 반성적으로 성찰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 인간의 욕망과 생명의 존엄성 사이
1951년 <신천지>에 발표된 「어둠 속에 찍힌 판화」는 「목넘이 마을의 개」와 더불어 인간의 욕망과 생명의 존엄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관계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전작 「목넘이 마을의 개」에서 떠돌이 개,흰둥이를 잡아먹으려는 마을사람들과 흰둥이가 새끼를 밴 것을 알아차리고 흰둥이의 살 길을 열어주는 간난이 할아버지 사이의 대립구조가 이 작품에서도 반복, 변주되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