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정의란 무엇인가. 서양철학에서 정의는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평등의 문제를 중심으로 논의되어 왔다.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가 오랫동안 계속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에 대한 합의는 아직도 형식적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각자에게 그의 몫을 주는 것'이 정의라는 주장이 일찍부터 폭넓은 공감을 얻어 왔다. 그러나 각자의 몫이 무엇인지 밝히지 않은 채 단지 각자에게 그의 몫을 주라는 요청만으로는 정의의 내용이 구체화될 수 없다. 예컨대 회사 사장의 몫과 같은 회사 경비원의 몫은 각기 무엇인가? 이를 어떤 기준에 의해 구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가?
오늘날 정의에 관한 다양한 견해들은 이런 문제에 대한 입장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혹자는 힘이 곧 정의라고 주장한다. 그에게 정의란 힘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정의를 사회질서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믿는 사람들은 정당한 몫의 기준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본다. 예를 들면 사회적 효율성의 관점에서 정의를 이해하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효율성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견해도 있다.
(나) 사회제도가 아직 형성되지 않은 가상의 집단이 있다. 이 집단의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집단에 적용할 사회제도를 합의를 통해 결정하려고 한다. 선택될 수 있는 사회제도는 ㉠ ㉡ ㉢의 세 가지이다. 어떤 사회제도가 실현되든 각 구성원은 동등한 자유와 공정한 기회를 보장받지만 사회 경제적인 면에서 A,B,C 라는 서로 다른 계층 중 하나에 속한다. 각 구성원이 사회 경제적인 면에서 갖게 될 행복 의 정도는 그가 속한 계층에 따라 결정된다. 이 행복의 정도를 수치로 표현하여 행복지수라고 부르기로 한다. 각 사회제도가 실현될 경우 각 구성원이 얻게 되는 행복지수는 다음 표와 같다.
사회제도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각 구성원은 행복지수를 가능한 한 가장 크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어떤 사회제도가 선택되기 이전에 각 구성원은 A,B,C의 계층이 가져다 줄 행복지수를 알고 있다. 그러나 각 구성원은 자신이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 어느 계층에 속하게 될지는 모른다.
(다) 진리가 사상 체계의 으뜸 덕목이라면 정의는 사회제도의 으뜸 덕목이다. 아무리 잘 만든 이론이라도 진리가 아니라면 물리치거나 고쳐야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쓸모있고 번듯한 제도라도 정의롭지 못하다면 다시 짜거나 버려야 한다. 사회 전체의 복지를 도모한다는 빌미로 정의를 어길 수 없다. 개인은 정의에 의해 온전히 보호되어야 한다. 정의는 다수의 이익을 위해 소수에게 희생을 짊어지우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따라서 동등한 시민적 자유가 이미 자리 잡은 사회는 정의롭다고 간주된다. 그 사회에서는 정치적 거래나 사회적인 이해타산이 정의가 수호하는 권리들을 좌우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정의관에 따르면 불평등한 분배가 모든 사람에게 이익을 가져오지 못한다면 분배는 평등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다시 말해 불평등이 모든 사람의 이익이 된다면 그 불평등은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정의관에서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사람들이 자유를 어느 정도 포기하는 대신 사회 경제적으로 충분히 보상받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정의관은 불평등이 허용될 수 있는 정도와 그 세세한 내용들에 대해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는다. 단지 모든 사람의 이익을 주장할 따름이다. 일반적인 정의관의 문제점은 노예제도마저 찬성하는 극단적인 예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경제적 이익은 월등한데 정치적 권리 행사가 정책에 미치는 영향력이 보잘것없다고 하여 사람들이 정치적 권리를 포기하는 사태도 있다. 따라서 일반적인 정의관을 고치고 다듬는 방향으로 정의의 원칙을 수립해야 한다. 그 원칙에서는 기본적 자유를 사회 경제적 이익과 교환하는 것을 배제해야 마땅하다. 정의의 원칙은 기본적 자유 다음으로 사회 경제적 분배의 문제를 고려한다. 사회 경제적 분배가 문제일 경우 사회계층들 사이에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차이를 도외시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 국가에서 기업가 계층의 일원으로 출발하는 사람은 미숙련 노동자 계층의 일원으로 출발하는 사람보다 훨씬 나은 미래를 기대할 것이다.
사회에 현존하는 부정의가 모두 말소된 상태가 되더라도 삶의 전망의 차이가 두 계층 사이에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의 삶의 전망에서 나타날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것은 무엇인가. 정의의 원칙은 미숙련 노동자와 같이 열악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미래의 삶의 전망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경우에 불평등을 인정한다. 삶의 전망에서 나타나는 불평등은 그 불평등을 줄일 때 사회적 약자의 처지가 더욱 악화될 경우에만 허용될 수 있다.
(라) 정의는 옳고 그름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 최대 행복의 원리를 도덕의 기초로 삼는 공리주의에 따르면 모든 행위는 행복의 증진에 기여하는 만큼 옳고 그 반대에 기여하는 만큼 그르다. 여기서 행복은 고통이 없는 쾌락의 상태를 의미하고 불행은 쾌락이 없는 고통의 상태를 의미한다. 결국 옳음과 그름,정의로움과 정의롭지 않음을 구별하는 기준은 사람들이 실제로 소망하는 것 즉 행복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