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원 라면'에 놀란 정부…물가 올린 진짜 범인은
경제야 놀자

'2000원 라면'에 놀란 정부…물가 올린 진짜 범인은

유승호 기자2025.06.26읽기 5원문 보기
#물가 통제#그리드플레이션#인플레이션#화폐 수량 방정식#통화량#수요·공급의 법칙#재정 지출#기대 인플레이션

정부 가격통제에 기업들 '고육지책'

1970년대 짜장면값 묶자 '간짜장' 등장

최근엔 '프리미엄 라면' 통해 우회 인상

기업의 탐욕이 물가 끌어올린다?

시장 원리서 벗어난 가격 인상 어려워

인플레는 장기적으로 통화량과 밀접

방만한 재정 운용도 인플레 유발

농심 신라면 블랙 봉지면은 편의점에서 1900원에 팔린다. 오뚜기의 빅컵누들은 2500원, 마슐랭 마라샹궈는 2300원이다. ‘프리미엄 라면’ 외에 신라면, 진라면 등 일반 라면도 편의점 기준 1000원 안팎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라면 한 개에 2000원 한다는데 진짜냐”며 놀랄 만하다. 새 정부가 생활 물가를 잡기 위해 기업들을 압박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물가가 오른 책임을 기업에만 물을 수는 없다. 사실은 정부에 더 큰 책임이 있다.신라면 블랙과 간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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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이 신라면 블랙을 출시한 것은 2011년 4월이다. 당시 신라면 블랙은 대형마트에서 네 봉지 한 묶음이 5280원에 판매됐다. 개당 가격은 1320원으로 신라면(584원)의 2.3배였다. 농심은 우골 성분을 첨가한 분말 스프에 표고버섯, 양파, 무, 배추 등을 넣어 설렁탕 국물 맛이 나고 영양소 균형을 갖춘 ‘건강 라면’이라고 선전했다.농심이 신라면 블랙을 내놓은 것은 다양한 소비자 기호를 충족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정부의 압박을 피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정부가 가공식품 가격 인상을 억제하자 타깃이 된 기존 신라면의 가격은 그대로 둔 채 그보다 비싼 신제품을 내놓는 우회적인 방식으로 가격을 올린 것이다.1970년대 간짜장이 탄생한 배경도 비슷하다. 그 시절 정부는 가격협정요금이란 이름으로 짜장면값을 묶어 놨다. 중식당 주인들은 꾀를 냈다. 간짜장이라는 신메뉴를 개발해 짜장면보다 비싸게 팔았다. 정부에서 조사하러 나오면 짜장면 가격은 안 올렸다고 답하면 됐다. 삼선짜장, 사천짜장, 쟁반짜장도 그렇게 등장했다. 정부의 물가 통제가 장기적으로는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일부에선 기업이 비용 증가분 이상으로 가격을 올려 소비자 부담을 키운다고 주장했다. 기업의 탐욕이 물가를 끌어올리는 ‘그리드플레이션’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요·공급의 원리가 작동하는 시장에서 가격을 마음대로 올릴 수 있는 기업은 많지 않다. 독점 기업도 가격이 오르면 수요량이 감소한다는 수요의 법칙에서 자유롭지 않다. 정말로 탐욕스러운 기업은 경쟁자를 시장에서 몰아내기 위해 오히려 가격을 내린다.“인플레는 화폐적 현상”인플레이션의 범인은 따로 있다. 물가는 단기적으로는 총수요와 총공급의 영향을 받지만, 장기적으로는 통화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래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밀턴 프리드먼은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이라고 말했다.이런 원리를 간단하게 나타낸 것이 1900년대 초반 미국 경제학자 어빙 피셔의 화폐 수량 방정식 MV=PY다. 여기서 M은 통화량, V는 화폐유통속도, P는 물가, Y는 실질 생산량이다.이 공식은 지극히 당연하면서도 아주 중요한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한 나라에서 생산되는 재화가 스마트폰 100개뿐이고, 스마트폰의 개당 가격은 1만원이며, 이 나라에서 유통되는 돈은 1만원짜리 50장이라고 하자. 스마트폰 100개를 사고팔려면 1만원짜리 50장이 두 번씩 유통돼야 한다. 즉 50만원(통화량)×2회(화폐유통속도)=1만원(물가)×100개(생산량)다.이 가운데 화폐유통속도는 장기적으로 큰 변화를 보이지 않는 변수다. 생산량 역시 부존자원과 생산성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 통화량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V와 Y가 상수라면 M=P, 다시 말해 통화량이 늘어난 만큼 물가가 오른다는 결론이 나온다. 한국의 통화량 증가율과 소비자물가 상승률 사이에도 이런 상관관계가 관찰된다.물가 안정은 정부의 책임방만한 재정 운용도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 정부가 재정 지출을 늘리면 총수요가 증가한다. 이때 총공급이 함께 늘어나지 못하면 물가가 오른다. 재정 지출 증가는 경제 주체들에게 돈이 풀린다는 인식을 심어 줘 기대 인플레이션을 높인다.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는 임금 인상 압력을 높이고 가수요를 일으켜 실제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양차 세계대전 사이 독일과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등 초인플레이션을 겪은 나라들은 재정 지출을 충당하기 위해 돈을 찍어냈다. 그런 의미에서 인플레이션은 화폐적 현상인 동시에 재정적 현상이기도 하다. 결국 물가를 안정시키려면 통화량을 적절하게 관리하고 재정 건전성을 유지해야 한다. 기업이 아니라 정부의 일이다.NIE 포인트

유승호 한국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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