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경제는 발전하기만 하는 걸까?
세계를 바꾼 순간들

인류의 경제는 발전하기만 하는 걸까?

김동욱 기자2025.06.05읽기 7원문 보기
#자급자족경제#로마제국의 멸망#교역 단절#경제성장#산업혁명#화폐 공급 감소#상업 쇠퇴#촌락 중심 경제

자급자족 농업경제가 중심이던 중세 유럽

로마제국이란 구심점 잃자 이슬람 세력 부상

동방과 교역 끊기며 상업·생활 수준도 후퇴

파피루스 대신 양피지, 기름 대신 양초 사용

실크 못 구해 최고위층까지 소박한 옷 입어

중세시대 서유럽은 촌락 중심 경제

해상 교역 줄어들며 직업 상인 사라져

로마시대 교환경제는 폐쇄적 소비경제로 대체

농민들, 의식주 대부분 촌락 내부에서 해결

경제적 측면서 본다면 중세는 '암흑시대'

중세 유럽의 자급자족적 농업경제 모습. /위키피디아 제공오늘날 현대인에게 경제성장은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인류사의 대부분 기간에 이루어진 성장은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지속적 성장은 산업혁명 이후의 특이한 일이었다. 로마제국의 멸망은 당대인에게 경제적 측면에서 가장 뚜렷하게 체감됐다. 로마제국이라는 구심점을 잃은 유럽은 이슬람 세력이 부상하면서 동방과의 교역선이 끊기자 자급자족경제로 전락해 점점 쇠퇴하게 된다. 이전까지 갈리아에선 마르세유 등의 무역항을 통해 콘스탄티노플, 이집트, 에스파냐, 이탈리아 등지에서 수입한 파피루스와 향료·고급 직물·포도주·올리브유 등 동방의 생산품을 수입했다.

하지만 이들 시리아나 동방에서 갈리아 지역으로 수입하던 상품은 8세기경에 이르러 수입로가 완전히 막혀버린다. 수출할 물건도 거의 없었다. 남은 극소수의 무역선을 이용해 동방에 내놓을 만한 것은 노예 정도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지속적으로 공급하기 어려운 데다 수지타산도 맞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상품부터 사라져갔다. 가장 먼저 파피루스가 없어졌다. 서유럽 지역에서 파피루스에 쓴 작품은 대부분 6~7세기 이전의 것이다. 메로빙거 시대에는 왕실 사무국에서 파피루스만 사용했지만, 시대가 흐르면서 파피루스보다 두껍고 다루기 불편한 데다 질도 떨어지는 양피지로 대체됐다.

8세기 말까지도 일부 개인 문서에서는 파피루스가 사용됐지만, 이는 예전에 수입해 보관하던 것을 이용한 것이다. 재고가 떨어진 뒤에는 그나마 이런 호사도 불가능해졌다. 중세사가 앙리 피렌은 “갈리아에서 파피루스가 사라진 것은 상업이 쇠퇴하고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향신료에 대한 언급도 이 시대 사료에서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입맛은 ‘강제로’ 단순해졌다. 향신료는 지중해 상업이 다시 활기를 띤 12세기가 돼서야 서유럽에 등장한다. 이집트 가자 지방 특산물인 와인 수입도 끊겼고, 아프리카 오일 역시 더는 들어오지 않았다.

아프리카산 오일을 구하지 못하게 되자 프로방스 지방에서 생산한 대체품으로 오일 수요를 메웠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이 시대 이후부터 교회에선 기름을 사용하는 등잔불이 아니라 양초를 이용해 불을 밝히게 됐다. 실크도 더는 구경할 수 없어 샤를마뉴 대제 같은 유럽의 최고위층까지도 소박한 옷을 입었다고 전해진다. 샤를마뉴의 검소한 의상은 이전 시대 메로빙거 국왕들의 화려한 의복과는 대조를 이루는 것이었다. 아마도 샤를마뉴가 검소하게 입고 싶어서는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시대에는 심지어 부의 상징인 금의 공급마저 감소했다. 8세기에 주조한 금화는 금과 은의 합금으로 주조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은의 분량이 증가했다.

금이 동방에서 더 이상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갈리아에선 금화가 아주 귀해 더는 통화로 사용하지 않게 됐다. 금은 교환의 매개물로 사용하기보다 교회를 장식하기 위한 보석으로, 혹은 장식용 마구로 가치를 더 인정받았다.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피핀과 샤를마뉴 시대부터는 데나리우스 은화만 주조했다. 해상 교역이 쇠퇴하면서 직업 상인이 사라졌다. 포도주와 소금 등 약간의 필수품 운송이나 소규모의 불법적 노예무역 정도만 명맥이 유지됐다. 상업은 소규모의 국지 상업으로 위축됐고, 상인도 비정규적 존재로 전락했다. 상품과 사치품은 상업을 통해서가 아니라 전쟁이나 약탈에 의해 유통되거나 선물 형태로 교환됐다.

중세시대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서유럽 주요 지역은 촌락 중심 경제로 재편됐고, 경제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던 농민의 삶은 촌락에 묶였다. 당시 농업 수준은 풍년이 들어도 잉여농산물이 거의 없고, 흉년이 들면 심각한 기근이 불가피한 수준이었다. 대장장이나 목수 등 일부 직업 분화가 있긴 했지만, 대부분 농민은 장인 역할까지 같이 했다. 살리카법전(Lex Salica)에서는 대장장이, 목수, 기타 노동자를 통칭하는 두루뭉술한 용어인 ‘파베르(faber)’만 등장할 뿐이었다. 그나마 소수의 장인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역 농민으로 세웠다. 로마제국 시대의 교환경제는 폐쇄적인 소비경제로 대체됐다.

9세기에 이르면 서유럽 지역은 ‘폐쇄적 가내 경제’ 혹은 ‘시장 없는 경제’의 황금기로 평가받기도 한다. 농민들이 촌락 바깥 세계와 접촉하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의식주의 대부분이 촌락 내부에서 해결됐다. 자연스럽게 농민들의 의식주는 매우 소박해서 진흙 벽에 초가지붕을 얹은 오두막이 주택의 대부분이었다. 옷은 솜씨가 서툰 아내가 만든 조잡한 것이었고, 음식은 거친 빵조차 넉넉하지 못했다. 운 좋은 사람들만 닭을 몇 마리 기를 뿐이었다. 겨울철에 먹여 살릴 수 없는 동물을 한꺼번에 도살하는 가을에만 소고기 등을 조금 맛볼 수 있었다.

겨울이나 여름이나 상관없이 방목지에서 ‘알아서 살아남던’ 돼지만이 주요 단백질 공급원이 됐다.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하듯 1086년 영국에서 이뤄진 대대적인 인구 조사 사업의 결과인 <둠즈데이 북(Domesday Book)>에서는 특정 촌락의 삼림 크기를 그 삼림에서 몇 마리의 돼지가 연명할 수 있는지로 표시했다. 상인들은 많은 지역에서 이방인 취급을 받았고, 신변의 안전을 보장받지 못했다. 카롤링거 왕조에서 여행자들에 대해선 식량과 사료 판매를 제외한 모든 밤에 이뤄지는 상행위는 불법으로 규정됐다. 노예나 말, 금은 제품 등의 품목이 거래될 때에는 백작이나 주교가 배석해 감시하도록 했다.

고대 세계에서 그토록 번성하던 경제는 교역의 끈이 끊기면서 어두운 퇴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르네상스 시기 유럽인은 ‘중세’라는 개념을 만들면서 대기시간 같은 ‘중간 시기’, ‘낀 시대’라는 경멸적 의미에서 중세를 ‘메디아 아이타스(media aetas)’ ‘메디움 아이붐(medium aevum)’이라고 불렀다. 중세인들로선 억울할 법한 규정이지만, 초창기 중세 경제의 모습은 후대인들에게 크게 내세울 게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경제적 측면만 보자면 ‘암흑 시대’로 불려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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