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민사소송 변론 도중 A판사의 발언은 원고 B씨에 대한 인격권 침해이므로 주의조치하라."
2010년 12월15일 서울중앙지법에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한 통의 통지가 날아들었다.
지법에서 진상 파악을 한 결과 당시 A판사는 변론 도중 B씨가 허락 없이 발언을 하자 법정예절을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B씨에게 '버릇없다'라는 말을 했음이 드러났다.
인권위는 "통상적으로 '버릇없다'는 표현은 '어른에게 예의를 지키지 않을 경우'에 나무라며 사용하는 말"이라며 "비록 B씨가 법정질서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 해도 사회통념상 40대인 A판사가 69세인 B씨에게 사용할 수 있는 말이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국민의 공복인 A판사가 B씨의 기본적 인격권을 침해했다고 결정한 것이다.
우리말에서 '버릇없다'란 말은 사전적으로 '어른이나 남 앞에서 마땅히 지켜야 할 예의가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특히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러니 인권위의 결정은 우리말을 쓰는 사람들의 상식적인 판단에 따라 맞게 이뤄진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요즘의 기준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우리말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또 다른 면도 있다.
법정에서 판사나 검사는 '영감님'들이다. 나이가 많아서 '영감'의 호칭을 붙이는 게 아니다.
지난 호에서도 살폈듯이 조선시대 때부터 정3품 이상, 즉 당상관 이상의 고위 관직에 있는 사람을 '영감'이라 불렀다.
지금같이 나이 많이 든 이를 대접해서 부르는 말로 일반화된 것은 나중의 일이다.
당상관 중에서도 정2품(지금의 장관급) 이상의 직책에 있는 사람은 '대감'으로 불렸다.
정3품에서 종2품까지의 당상관을 '영감'이라 했으니 '대감'은 이들보다 위인 셈이다.
당상관 밑의 직급은 당하관이라 칭했는데 이들을 부르는 말이 '나리'다. '나리'는 나중에 '지체가 높거나 권세가 있는 사람을 높여 부르는 말'로 좀 더 넓게 쓰이게 됐지만 본래 당하관을 높여 부르던 말이다.
이때 '당하관'이란 정3품 하(下) 이하의 품계에 해당하는 벼슬아치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영감으로 불리던 직급 밑에 있는 사람들이 '나리'에 해당하는 셈이다.
한 고을의 우두머리인 '사또'를 높여 부를 때 '사또 나리'라고 하는 게 대표적인 예이다.
'사또'는 '사도(使道)'가 본래 말인데 세월이 흐르면서 된소리로 변했다.
일반 백성이나 하급 벼슬아치들이 자기 고을의 원(員)을 존대하여 부르던 말이다.
이처럼 예부터 나이에 상관없이 관직에 있는 사람은 지위에 따라 대감이나 영감, 나리 같은 호칭이 붙었다.
이런 말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본래의 의미에서 확대돼 더 넓게 쓰이게 됐지만 여전히 '권위의 상징'으로 불린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그 중에서도 국회의원 나리니 검사 나리니, 세관 나리니 하는 식으로 부를 때는 영감이나 대감을 붙일 때와 달리 다소 비아냥거리는 느낌을 담아 쓰인다.
'나리'의 원말은 '나으리'인데, 우리 언어관습에선 비교적 여전히 익숙한 말이지만 규범적으로는 버린 말이다. '나리'로 통일해 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