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어린이 왜 도와야 하나. ' 몇 해 전 한 신문 제목으로 크게 쓰인 이 말은 우리말의 아킬레스건 하나를 잘 보여준다.
당시 이 신문은 기아선상에서 허덕이고 있는 북한 어린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었다.
'북한 어린이 왜 도와야 하나'라는 제목의 이 기사는 그 캠페인의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해 작성된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제목으로 쓰인 이 문장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명료하지 않은,그다지 잘 만든 표현은 아니라고 할 만하다.
왜냐하면 보는 이에 따라 그 뜻이 도와야 한다는 것인지,돕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지 다르게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말에서 이처럼 문장 자체만으로 뜻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표현이 꽤 많다.
가령 '우리가 거기에 왜 가나'라고 했을 때 그 말은 가긴 가는데 '왜 가는 것인지'를 묻는 말일까?
아니면 '가지 않음' 또는 '갈 이유가 없음'을 전제로 이를 강조해 표현하는 말일까.
해석하기에 따라 정반대의 의미를 띤다.
'초등학교 동창인 철수와 영희가 얼마 전에 결혼했다'란 말도 이중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다.
'철수와 영희가 결혼해서 두 사람이 부부가 됐다'는 뜻일까?
아니면 '철수가 누군가와 결혼했다' '영희 역시 다른 누군가와 결혼했다'이 두 사실을 한 데 묶어 말한 것일까?
우리말에서 모호한 표현이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이 되는 것을 '중의성'이라 부른다.
이는 우리말만의 특성이 아니라,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다른 언어에서도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뜻을 분명하고 엄격하게 써야하는 글에서는 극복해야 할 표현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중의성을 최대한 줄이기 위한 여러 기법 중의 하나에 주격 조사와 주제격 조사의 구별이 있다.
우리말의 '-은/는, -이/가'를 보통 주격조사라 한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주격조사는 '이/가/께서/에서'를 가리킨다.
'이/가'는 평칭이고 '께서'는 존칭에 붙는다.
'에서'는 단체에 붙는 주격조사의 또 다른 형태다.
"이 보고서는 누가 만들었냐?" "우리 학교에서 만들었다"와 같은 경우에 쓰인 '에서'가 그에 해당한다.
'은/는'은 통상 주어에 붙는다고 해서 주격조사에 넣기는 하지만 정확히는 보조사이다.
대개 그 쓰임새는 1)주제 표시 내지 보편 속성을 나타냄('사람은 죽는다. ')
2)대조 배타의 뜻을 나타냄('산은 높고 물은 깊다. ')
3)강조하는 뜻을 나타냄('가끔은 운동도 한다. ')<금성판 국어대사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