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과 과음으로부터 간장을 보호한다'는 컨셉트로 약명을 짓기 위해 고심하던 강신호의 뇌리에 반짝하고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유학 시절 함부르크 시청 지하 홀에서 보았던 박카스 신상(神像)이었다. 더구나 박카스는 추수와 술의 신이 아니었던가."
국내 제약업 사상 최장수 · 최대 판매액이란 신화를 쌓아올린 동아제약 드링크제 '박카스'.
<동아제약 70년사>는 1960년 상표명 '박카스'의 탄생 순간(제조허가)을 이렇게 전한다.
하지만 그 박카스도 처음부터 날개 돋친 듯 팔린 것은 아니다.
'박카스정'이란 이름으로 1961년 시중에 처음 선보였을 땐 알약 형태였다.
겉에는 당분이 든 얇은 막을 입혔다. 당의정(糖衣錠)이란 것이었다.
알약 중에서도 불쾌한 맛이나 냄새를 피하고 약물의 변질을 막기 위해 표면에 당분을 입힌 정제를 당의정이라 부른다.
그런데 불행히도 1960년대 초만 해도 우리나라의 당의정 만드는 기술은 변변치 않았다.
'박카스 당의정'이 시판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돼 당의정이 녹아내리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반품사태로 어려움에 직면한 동아제약은 제품을 앰플 형태로 바꿔 '박카스 내복액'을 내놓았으나 상황은 호전되지 않았다.
1963년 마시기 편한 드링크 타입 제품 '박카스D'가 나오면서 드디어 신화창조의 서막이 올랐다.
'박카스D'는 1964년 단숨에 드링크제 부문을 평정해 판매액 1위로 올라섰다.
동아제약은 그 여세를 몰아 1967년 제약업계 1위로 발돋움했다.
이후 동아제약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제약업계 정상을 놓치지 않았다.
<동아제약 70년사>에 따르면 동아제약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박카스'를 작명한 사람은 창업주 강중희씨의 장남인 강신호 현 회장이다.
독일 유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청년 강신호는 부친이 세운 동아제약의 경영을 돕기 위해 1959년 교수의 꿈을 접고 귀국했다.
그가 동아제약에 상무로 입사해 신제품으로 내놓은 첫 작품이 '박카스'인 셈이다.
한 손에 포도송이를,또 다른 손엔 곡식을 든 박카스 석고상이 유학 시절의 강신호에게 깊은 인상으로 남아 있었던 결과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박카스는 자연의 생성력 및 포도,포도주를 다스리는 신이다.
그래서 대지의 풍요를 주재하는 신이고 '술의 신'으로 통한다.
신과 인간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반신(半神)이어서 본래 신화에서는 상대적으로 격이 떨어지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드링크제 '박카스' 덕분에 그 어느 신보다 더 친근하고 대중적인 이미지로 자리매김 했다.
하지만 우리 국어사전에 '박카스'란 말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에 '바쿠스'와 '바커스'가 올라 있다.
우리가 아는 '박카스'를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적으면 '바쿠스'가 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