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시인부락' 동인으로 함께 활동한 서정주와 김동리는 연배도 비슷해 자주 술자리를 가졌다.
하루는 술이 거나해진 김동리가 "어젯밤 잠이 안 와서 지었다"면서 자작시 한 편을 읊었다.
끄트머리에 가서 '벙어리도 꽃이 피면 우는 것을…'이라는 대목에 이르자 서정주가 탄성을 지르며 말했다.
"내 이제야말로 자네를 시인으로 인정하겠네."
말 못하는 벙어리도 꽃이 피면 운다는 표현에서 내심 탁월한 서정미를 느낀 것이다.
그러자 김동리가 말했다.
"아니,나는 '벙어리도 꼬집히면 우는 것을'이라고 썼는데…."
2008년 1월 한 신문의 칼럼을 통해 소개돼 제법 알려진 이 일화는 시적 표현과 산문적 발상의 차이를 보여 주는 사례로 잘 인용된다.
시인이자 우리말 연구가인 우재욱 선생은 이 얘기를 좀 다른 각도에서 소개한다.
누군가가 '꼬집히면'이라 말했을 때 다른 사람은 '꽃이 피면'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처럼 우리말에서 발음이 비슷하다는 점 때문에 사람들에게 잘못 알려진 말들이 꽤 많다는 것이다.
그 중엔 잘못 쓰는 말이 세력이 커져 오히려 본래의 말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도 종종 나타난다.
"글씨를 끌쩍끌쩍 써온 게 영 정성이 없어 보인다." "새로 산 만년필로 몇 글자 끄적끄적해 보았다." "심심해서 연습장에 깔짝깔짝 낙서를 했다."
'끌쩍끌쩍/끄적끄적/깔짝깔짝.'
이들은 사람이나 사물의 모양이나 움직임을 흉내 낸 말이다.
'아장아장','엉금엉금','번쩍번쩍' 등과 같은 의태어이다.
우리말에는 의성어 의태어가 발달해 섬세하고도 다양한 어감을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작은 음상의 차이로 변화를 주기 때문에 비슷한 형태의 말 사이에는 헷갈리기 쉬운 경우가 많다.
여기서도 일상에서 무심코 쓰곤 하는 말이지만 아쉽게도 모두 바른 말이 아니다.
'글씨나 그림 따위를 아무렇게나 쓰거나 그리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은 '끼적끼적'이다.
그러니 예문에 쓰인 '끌쩍끌쩍/끄적끄적/깔짝깔짝'은 모두 '끼적끼적'이 와야 할 자리이다.
'끼적끼적'은 또 '달갑지 않은 음식을 자꾸 마지못해 굼뜨게 먹는 모양'을 가리킬 때도 쓰인다.
"뭔 밥을 그리 끼적끼적(깨작깨작) 먹냐"처럼 쓰인다.
'깨작깨작'은 '끼적끼적'의 작은 말이니 상황에 따라 바꿔 쓸 수 있다.
그러나 '끄적끄적'은 버리고 '끼적끼적'으로 통일해 쓰기로 했다.
이에 비해 '끌쩍끌쩍'이나 '깔짝깔짝'은 형태는 비슷하지만 뜻은 사뭇 다르다.
'끌쩍끌쩍'은 '자꾸 긁어서 뜯거나 진집을 내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이다. ('진집'은 '너무 긁어서 살갗이 벗어지고 짓무른 상처'를 뜻하는 우리 고유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