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씨와 셀시우스
요즘 미국에서 '오'씨의 시대가 열렸다고 한다.
얼마 전 있었던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가 당선된 뒤 나온 우스갯소리다.
하지만 그게 전혀 생뚱맞은 얘기는 아니다.
이미 미국에선 '오 세대(Generation O : 자신감이 강하고 팀워크와 능력 우선주의를 중시하는 18~29세 사이의 청년층. 오바마의 첫 알파벳인 O를 따서 만들었다)'란 신조어가 나왔다고 한다.
더구나 오바마가 '오'씨가 될 수 있는 것은 우리말의 역사를 살펴보면 충분히 그럴 만한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나파륜(拿破崙) 피택고(皮宅高).
지금 이런 이름을 쓰지도,기억하는 이도 없겠지만 엄연히 지난날 우리말에서 쓰였던 이름이다.
지금 같은 외래어 표기법이 없었던 1900년대 초 우리는 나폴레옹,피타고라스를 한자로 취음해 이렇게 옮겨 적었다.
그러니 그 옛날 나폴레옹은 나씨,피타고라스는 피씨로 통했던 셈이다.
최근에도 이런 현상은 종종 볼 수 있다.
스티븐스 미국대사의 한국 이름은 심은경이다.
그는 30여년 전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에 와 충남 예산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친 적이 있는데,이때 적힌 인사기록 카드에는 이름 '심은경' 본관 '아리조나'로 돼 있다.
당시 그의 한국 이름은 본명을 충실히 살리지는 못했어도 적어도 '심'에는 스티븐스의 S를 반영한 흔적이 엿보인다.
전임 미국대사인 알렉산더 버시바우도 한국 이름이 있다.
'박보우(朴寶友)'가 그것이다.
2006년 3월 한·미동맹친선회에서 지어준 것인데,본명을 비교적 잘 반영한 절묘한 이름짓기이다.
지금이야 우리가 외래 인명이나 지명을 소리 나는 대로 한글로 적으면 되기 때문에 이들이 굳이 한국 이름을 따로 가진 것은 그만큼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일 터이다.
하지만 옛날 나파륜이나 피택고 같은 음역어에는 당시 외래 인명을 그렇게밖에 적을 수 없었던 우리말의 역사가 담겨 있다.
그러니 지금 우스갯소리나마 오바마를 굳이 '오'씨라 한들 딱히 잘못됐다 할 수도 없을 터이다.
취음어는 외래어 표기법이 마련되기 이전에 외래어를 적던 방식인데,이렇게 만들어진 말 가운데는 완전히 우리말 속에 뿌리를 내려 우리가 여간해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섭씨,화씨가 그것이다.
온도 단위의 하나로 '℃'로 적는 이 '섭씨'는 고안자인 스웨덴의 셀시우스(Celsius.A)의 중국 음역어인 '섭이사(攝爾思)'에서 온 말이다.
첫 글자 '섭'을 따고 거기에 '씨(氏)'를 붙여 만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