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사태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뿐 아니라 러시아계 비율이 높은 동유럽 국가 도시들도 러시아에 병합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에스토니아를 비롯한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러시아인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국가들은 사태의 진행 방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우크라이나 동부에서는 친러시아 시위대가 정부 주요 청사를 점거하며 분리 독립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소비에트연방 시절 동유럽 일대에 흩어진 러시아인들이 푸틴의 ‘팽창주의’를 합리화하는 뇌관으로 본격 등장하고 있는 셈이다. 동유럽 러시아계, 푸틴 팽창주의 미끼
에스토니아 제2의 도시 나르바,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인구 6만3000명의 이 소도시가 최근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거주자의 82%가 러시아계 주민이어서 ‘제2의 크림사태’가 우려되고 있어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러시아의 크림 합병 이후 나르바 지역이 지정학적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을 시험할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지금도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곳은 우크라이나다. 동부 도네츠크, 하리코프 등에서는 친러시아 시위대가 최근 정부 청사와 경찰서 등을 점거하면서 시민공화국을 선포했다.
뉴욕타임스는 “청사 점거 과정에서 300정의 자동소총과 400정의 러시아 제식권총 ‘마카로프’ 등이 시위대 손에 들어갔다”며 “우크라이나 정부가 통제권을 상실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정부를 향해 “시위대에 어떤 물리력을 사용할 경우 위기를 해결하는 데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가운데 우크라이나 정부도 시위대 무력 진압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가 러시아 국기를 단 장갑차를 사용해 러시아군이 개입했다는 소문이 퍼지는 등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서방세계는 러시아가 침공의 구실을 만들기 위해 이 같은 상황을 배후조종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서방·러시아 갈등에 경제도 멍들어
러시아와 서방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동유럽 국가들은 경제적인 후폭풍에도 시달리고 있다.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가격 인상 등으로 타격을 받고 있는 우크라이나가 대표적이다. 크림 합병으로 우크라이나와 갈등을 빚고 있는 러시아는 이달 1일부터 우크라이나에 대한 가스 공급가를 종전보다 80% 이상 인상했다. 이에 따라 지난달까지 1000㎥당 268.5달러였던 가스 공급가는 이날부터 485.5달러로 올랐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앞으로 우크라이나가 선불 조건으로 가스를 공급받게 될 것이라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푸틴 대통령은 내각 회의에서 “현 상황에서 (러시아 국영가스회사) 가즈프롬은 우크라이나가 한 달 전에 미리 지급한 금액에 해당하는 양만큼의 가스만 공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당장 선불 시스템으로 이행하지는 말고 유럽연합(EU), 우크라이나 등과 추가 협상을 한 뒤 최종 결정을 내리라고 지시했다. 블라디미르 치초프 EU 주재 러시아 대사는 “만일 슬로바키아나 헝가리가 러시아로부터 수입하는 가스를 우크라이나에 역수출할 경우 EU에 대한 러시아 가스공급이 중단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크라이나는 수입 중단으로 대응했다. 우크라이나는 9일부터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을 중단했다.
이타르타스통신에 따르면 유리 프로단 우크라이나 에너지·석탄산업부 장관은 이날 내각회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오늘부터 러시아 가스 수령을 중단했다”면서 “이달 1일부터 올린 가스 가격에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러시아와 1분기 때까지 지켜졌던 가스 가격 수준으로 되돌아가기 위한 협상을 계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 기준금리 인상
통화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기준금리도 인상했다. 우크라이나 중앙은행은 14일 연 6.5%이던 기준금리(재할인율)를 연 9.5%로 3.0%포인트 인상했다. 또 하루짜리 초단기 금리도 연 7.5%에서 연 14.5%로 상향 조정했다. 우크라이나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한 것은 정정 불안에 따른 통화가치 급락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FT는 분석했다. 러시아와 서방 사이에 낀 발트 3국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러시아는 리투아니아의 가장 큰 무역 파트너다. 전체 무역의 25%를 러시아가 차지하고 있다.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도 러시아와의 무역 규모가 10%에 이른다. 이코노미스트는 “발트 3국은 항구와 수송, 물류는 물론 가스, 농업분야에 대한 러시아 의존도가 높다”며 “서방의 경제 제재로 발트 3국이 가장 비싼 대가를 치를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