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나설 일 아닌데도 관여…멍드는 시장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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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나설 일 아닌데도 관여…멍드는 시장경제

손정희 기자2013.05.30읽기 7원문 보기
#입법 만능주의#경제민주화#공정거래법 개정안#갑을 관계#불공정거래 행위#의원입법#금융회사지배구조법#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재계가 6월 임시국회를 앞두고 바짝 긴장하고 있다. ‘입법 만능주의’에 빠진 국회가 경제민주화 차원에서 어떤 법을 양산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법의 타당성과 실효성을 제대로 따지지 않은 채 각종 규제를 담은 법이 쏟아지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법을 만드는 행위 자체는 국민이 국회의원에게 부여한 고유 권한이지만 최근의 입법 활동은 과도하다는 시각이 많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현 국회 상황은 입법 과잉”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국회가 나설 일이 아닌데 관여하고,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면서 법으로만 해결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국회가 모든 갈등을 법으로 해결하려는 입법 만능주의에 빠졌다는 비판이다. #브레이크 없는 의회국회의 과잉 입법은 가맹본부와 가맹사업자 간 불합리한 ‘갑을(甲乙)’ 관계를 손보는 법안(공정거래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이른바 ‘남양유업’ 사건을 빌미로 여야는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해 최대 10배의 손해배상액을 물리는 법안을 경쟁하듯 내놓고 있다. 주무부처 수장(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까지 “가맹본부와 가맹사업자 간에 문제가 조금 있다고 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관련 법을 무턱대고 만들 수는 없다”고 우려했을 정도다. 과도한 입법 추진은 필연적으로 부실 입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규제 심사와 공청회 등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 의원입법의 특성 때문이다. 지난 4월 국회는 2016년부터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는 법안(고용상 연령차별금지법), 화학물질 유출 사고가 난 기업에 연간 매출의 5%를 과징금으로 부과하는 법안(유해화학물질 관리법)을 충분한 의견 수렴 절차 없이 통과시켰다. 두 법안 모두 “시기상조” “과잉 처벌”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그럼에도 6월 임시국회에서 이런 법안 통과가 되풀이될 여지가 크다는 데 문제가 있다. 여야는 3일 국회를 열어 공정거래법 개정안(대기업의 부당 내부거래 규제 강화), 금융회사지배구조법(대주주 적격성 심사 확대) 등 파급력이 큰 법안을 처리한다는 계획이다.

#국회보좌진 기업엔 '슈퍼 甲' 불공정 거래 행위를 손보기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안 입법 바람이 불면서 아이러니컬하게도 국회가 또 다른 슈퍼 갑(甲)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모 의원실 비서관은 업무와 관련이 있는 기업 등에 가족의 결혼식 청첩장을 돌렸다. 국회와 정부부처를 담당하는 대관(對官)업무 직원들은 이를 두고 골치를 앓고 있다. 국회 정무위는 각종 경제민주화 관련 법을 다루는 상임위다.

한 관계자는 “요즘은 국회의원 자녀들도 알리지 않거나 축의금을 받지 않고 조용히 결혼하는데 청첩장을 받고 이름을 확인한 순간 깜짝 놀랐다”며 “자신의 결혼식도 아닌 가족의 결혼식 청첩장을 돌리는 건 너무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국회 보좌진이 해당 기업의 상품이나 서비스 이용 등을 공짜로 요구하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한다. 대관업무 담당자들이 이처럼 ‘하을(下乙·을 중에서도 낮다는 의미)’로 지내는 건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각종 입법이 난무해 의원이 아닌 의원실 보좌진에게서도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많기 때문이다.

국회 관계자는 “몇몇 의원을 제외하면 사실 입법에 대해 모르는 의원이 많다”며 “의원은 입법 방향을 지시하고 실무는 보좌진이 알아서 하는 경우도 많고, 방향 지시에도 보좌진의 입김이 많이 들어간다”고 전했다. #법사위원회 월권 논란도 ‘입법 홍수’라 불릴 정도로 많은 법안이 쏟아지며 주목받고 있는 곳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다. 법사위는 각 상임위원회에서 올라온 법안들에 대한 법체계 검토와 수정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최근 국회에서 일고 있는 법사위 월권 논란은 각 상임위에서 ‘자격 미달’ 법안이 올라오기 때문에 법사위가 이를 과도하게 수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는 시각이 있다.

4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유해화학물질관리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여야 환경노동위원들이 유해화학물질 유출 사고로 중대한 피해를 일으킨 업체에 물리는 과징금 기준을 ‘기업 전체 매출의 10% 이하’로 정했지만 법사위원들이 이를 ‘개별 사업장 매출의 5% 이하’로 고쳤다. 이에 여야 환노위원들은 법사위가 개정안의 본질적 내용까지 수정해도 되느냐며 크게 반발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법사위처럼 특정 상임위에다 법 체계 및 자구 심사권을 부여해 옥상옥(지붕 위에 또 지붕을 얹는다는 뜻으로 불필요하게 일을 이중으로 하는 것을 의미)을 만들어주는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정치권 관계자는 “미국은 물론 다른 어느 나라 의회를 보더라도 특정 상임위가 다른 상임위에서 통과된 법안의 내용을 임의로 수정하는 사례를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법사위가 상임위 및 소관부처 간 조정 기능을 맡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법사위의 고유 기능으로 명시된 법 체계 및 자구 심사권도 폐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태명 한국경제신문 기자 chihiro@hankyung.com-----------------------------------------------------------------------선진국 의회는 의원입법도 '규제심사' 의무화 미국 영국 독일 등 선진국의 의원입법 과정은 깐깐한 편이어서 졸속 입법 시비가 거의 없다. 민주적 절차에 따른 입법의 역사가 긴 이들 국가 역시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은 뒤에야 정교한 제도를 도입할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한국도 브레이크 없는 의회 권력을 제어하기 위해 선진국의 몇몇 입법 장치를 적극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에서는 의원 발의 법안이 의회에서 정식 논의(청문회) 전에 대부분 폐기된다. 첫 번째 관문인 소관 상임위원회의 서류 심사를 통과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의원들이 낸 법안들은 한국의 감사원 격인 회계감사원(General Accounting Office)에서 엄밀하게 분석하고 그 결과를 상임위에 제출한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상임위는 가치 있는 법안을 고른다. 의원법안만 허용하는 영국도 전문적인 규제개혁 기구를 의회 내에 두고 있어 규제 법률이 쉽게 통과되지 못하는 구조다. 정부 각 부처에도 규제심사국이 있으며 상·하 양원에는 규제개혁을 전담하는 위원회를 각각 두고 있다.

또 영국 규제정책 위원회, 네덜란드 행정부담자문위원회, 스웨덴 규제철폐위원회 등도 규제 법안의 타당성을 촘촘하게 따지고 있다. 프랑스도 2008년 헌법을 개정해 입법에 따른 규제 영향을 평가하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 관계자는 “법안 제출권이 정부와 의회 모두에 있는 독일은 80% 이상이 정부 입법 법안이고 의원 입법만 가능한 미국과 영국도 대부분 법안이 정부에서 나온다”며 “한국과 달리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필요한 법만 새로 만들어진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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