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아시아 순방…  힘 빠진 미국의 ‘공손한 외교’ 안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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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아시아 순방… 힘 빠진 미국의 ‘공손한 외교’ 안통했다

조귀동 기자2009.11.18읽기 8원문 보기
#금융위기#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환율 문제#기후변화 협약#온실가스 감축#FTAAP(아·태자유무역지대)#지역주의#미·중 경제 갈등

日·中 등과 정상회담서 외교쟁점 풀기 별다른 성과없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아시아 순방을 마쳤다. 오바마 대통령은 13일 일본을 시작으로 15일 싱가포르서 열리는 아시아 · 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뒤 중국과 한국을 방문하는 등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금융위기 이후 파워가 급격히 약해진 미국에 비해 아시아 국가들의 위상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황에서 이뤄진 오바마 대통령의 순방은 어느 전임 미 대통령과도 달랐다.

일본 오키나와 미군 기지 이전 문제, 중국 위안화 환율 및 인권 문제, APEC 국가들과의 기후변화 협약문제, 북한 핵문제 가운데 가시적인 성과를 낸 것은 거의 없었다. 중동과 유럽 순방에서 보여준 오바마 대통령 특유의 개인적인 매력과 카리스마를 발산하지도 못했다. 대신 오바마 대통령이 순방 중에 보인 '공손한' 태도는 미국 내에서 거센 비판을 받았다. 첫 방문지인 일본부터가 오바마 대통령에겐 상당히 껄끄러운 회담 상대였다. 지난 9월 출범한 일본 민주당 정권이 '대등한 미 · 일 외교'를 내세우고 있는데다 오키나와현 후텐마 미군기지 이전 문제로 양국 간 관계가 냉랭해져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13일 하토야마 총리와 1시간 반 동안 회담을 진행하며 양국 간 동맹 강화에 합의했다. 하지만 최대 현안인 후텐마 기지 이전을 비롯해 주일미군 지위협정 개정과 일본 해상자위대의 인도양 급유지원 중단 등 군사 관련 쟁점에 대해선 뚜렷한 결론을 내지 않았다. 다만 하토야마 총리는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는 새롭게 설치되는 각료급 회의체에서 가능한 한 조속히 결론을 내겠다"고 말했다. 대신 오바마 대통령은 소탈한 태도와 친근한 언변으로 일본인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그는 어린 시절 가마쿠라를 방문한 경험을 이야기하며 일본에 대한 호감을 표시했다.

NHK와의 인터뷰에선 "어릴 적 하와이와 인도네시아에서 많은 일본인을 접했다"며 "그들의 근면성과 높은 교육수준,훌륭한 문화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치켜세웠다. 나아가 아키히토 일왕을 만나서는 허리를 90도로 숙여 정중하게 인사하기까지 했다. 이에 대해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일본 언론들이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 등으로 일본 내 반미여론이 커질 것을 경계한 치밀한 전략"이라면서 경계하는 태도를 보였을 정도다.

하지만 바로 다음 날인 14일 하토야마 총리는 "오바마 대통령은 기존 합의를 전제로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를 논의하고 싶어할 수도 있으나 이렇게 되면 실무회의팀을 가동할 필요가 없다"면서 완전히 백지 상태에서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으로선 체면을 구긴 셈이다. 싱가포르에서 14~15일 열린 APEC 정상회의에서도 미국의 리더십은 예전만 못했다. 다음 달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유엔 기후변화 정상회의를 앞두고 논의 중인 온실가스 감축 규모에 대해서 APEC 회원국 간 이견이 끝까지 조율되지 않아 최종 정상선언문에는 구체적인 감축 목표가 포함되지 않았다.

원래 초안엔 2050년까지 온실가스를 1990년 대비 50% 감축한다는 내용이 들어가기로 돼있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세계 지도자들이 내달 코펜하겐에서 구속력있는 기후변화 협약을 마련하기로 한 야심을 포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히려 APEC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가 본격화되었음을 확인했을 뿐이다. 아 · 태자유무역지대(FTAAP) 구축과 관련해 하토야마 일본 총리 등은 "아시아에서 개방적인 지역주의를 촉진시켜야 하며 미국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아시아 지역의 경제통합에 미국이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중국은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10개 회원국과 한국 · 중국 · 일본만 참여하는 형식이 돼야 한다며 어깃장을 놓았다. 사흘간의 중국 방문에서 오마바 대통령은 미 대통령의 격에 어울리지 않는 푸대접을 받았다. 물론 중국 측의 손님 접대는 예의가 발랐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오바마 대통령과 같이 3일간 저녁식사를 같이했으며, 차기 지도자로 유력한 시진핑 국가부주석이 17일 직접 서우두 공항에 나가 상하이에서 도착한 오바마 대통령을 맞이했다. 심지어 오바마 대통령의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를 상점 판매대 위에서 모조리 치워버리는 과공(過恭)도 보여줬다. 하지만 그는 철저하게 중국민들과 차단됐다.

18, 19일 이틀에 걸쳐 고궁(자금성)과 만리장성을 관광할 때는 아예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됐다. 상하이에서 가진 오바마 대통령과 대학생과의 대화는 전국TV가 아닌 지역방송에서만 중계됐다. 게다가 대화에 참여한 대학생들은 모두 핵심 청년 공산당원이었다. 후진타오 주석과 정상회담 후 합동발표회를 할 때나 상하이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말한 내용은 왜곡되거나 누락돼서 전달됐다. 관영 신화통신의 문자중계 서비스는 일부 단어를 바꾸거나 빠뜨리는 전례없는 외교적 결례를 저지르기까지 했다. 미국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위안화 환율 문제에 대해 중국 측은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시장지향적인 환율시스템으로 가는 것이 글로벌 불균형 해소를 위한 노력에 필수적인 기여를 할 것"이라며 간접적으로 위안화 평가절상을 요구한 오바마 대통령에게 후진타오 주석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각종 형태의 보호주의에 반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며 동문서답했다. AP통신은 "오바마와 후진타오가 (정상회담에서) 협력하는 모습을 선보였지만 괴리감은 여전했다"고 평가했다. 오히려 오바마 대통령은 그간 티베트 문제와 중국 내 인권보장 등 역대 미국 대통령이 강조한 인권 관련 이슈에 대해 침묵했다. 미국 대통령이 방문국의 진보적인 인사들을 만나면서 인권 문제를 제기하던 관례를 벗어난 것이다.

나아가 그는 "티베트는 중국 영토의 일부임을 인식하고 있다"며 티베트가 중국의 영토임을 공개적으로 인정해줄 것을 요구한 중국측 입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는 다급한 쪽은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점을 상징적으로 시사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국제사회의 복잡한 문제들을 한 나라가 해결할 수 없다"며 중국과의 협력이 긴요하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또 중국이 글로벌 리더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점을 간접적인 화법으로 수차례 강조하며 중국의 책임을 부각시켰다. 정치전문 인터넷매체 폴리티코는 이번 아시아 순방이 "오바마 특유의 '공손함의 외교'의 명암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조지 부시 전 대통령 시절의 일방주의적인 접근을 지양하고 상대국을 존중하고 공동의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외교 목표를 달성하려고 하지만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폴리티코는 러시아와의 전략핵무기 감축 협정, 코펜하겐 기후 변화협약, 이란과 북한 핵개발 등 각종 현안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제대로 된 진척을 이룬게 하나도 없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백악관은 오바마 대통령의 외교 방침이 장기적으로 성과를 낼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데이비드 악셀로드 선임고문은 "오바마 대통령의 외교는 어려운 현안들을 풀어나가는데 다른 나라들과 관계를 중시해야 한다는 확신에서 나온 것이며 미국이 처해있는 현실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에 깔고 있다"고 옹호했다. 또 그는 "오바마 대통령의 방식은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미국의 수출시장을 열고, 국가안보를 다지는 데 큰 진전을 가져오고 있다"면서 "모든 결과가 즉각 드러나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귀동 한국경제신문 기자 claymo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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