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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이나 백화점 등에서 자주 이용하는 에스컬레이터 앞에 서면 늘 보이지 않는 눈치싸움이 벌어진다. 오른쪽에는 길게 줄을 서서 가만히 서 있고, 왼쪽은 바쁜 이들이 걸어갈 수 있도록 비워두는 광경이다. 에스컬레이터 ‘한 줄 서기’다. 1990년대 후반 시민운동으로 시작돼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정착된 한 줄 서기는 오랫동안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에티켓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한쪽으로 쏠린 하중으로 인한 기계 고장 위험, 걷거나 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고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최근 행정안전부가 에스컬레이터 이용 방식을 다시 공론화하면서 ‘두 줄 서기’ 전환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달아오르고 있다. 공공시설의 안전관리 책임과 시민들의 오랜 생활 습관이 충돌하면서 단순한 이용 방식을 넘어 사회적 합의를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찬성] 사고 예방이 최우선…설비 보호 등을 위해서도 필요
에스컬레이터 두 줄 서기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입장은 무엇보다 ‘이용자 안전’과 ‘설비의 고장 방지’ 등을 핵심 이유로 제시한다. 에스컬레이터는 본래 정지 상태로 탑승하도록 설계된 승강 기구다. 디딤판 위를 걷거나 뛰어 이동할 경우 순간적으로 가해지는 충격은 가만히 서 있을 때보다 훨씬 크다.
센서 측정 결과에 따르면 에스컬레이터를 걸어 오를 때는 체중의 약 1.5배, 걸어 내려올 때는 약 2배의 하중이 발판에 전달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러한 충격과 한쪽 쏠림 현상은 장비의 치명적인 마모와 고장을 유발할 수 있다. 결국 대형 승강기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커진다. 최근 30여년간 발생한 에스컬레이터 사고의 72% 이상이 이용자 과실에 의한 것이었고, 피해자의 절반 이상이 60세 이상 고령층이었다는 점은 안전 수칙의 엄격한 적용이 시급함을 보여준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수록 작은 충격이나 미끄러짐도 심각한 중상으로 이어질 수 있어 예방책 마련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에스컬레이터 손잡이를 잡지 않고 이동하다가 앞사람과 부딪힐 경우 순식간에 다중 연쇄 추락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심각한 인명 피해를 낳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또 전체 이용자 관점에서의 이동 효율성도 두 줄 서기가 더 우수하다는 지적도 있다. 에스컬레이터에서 실제로 걷는 이용자는 전체의 약 25%에 불과하다. 한쪽 줄을 비워두는 행위는 나머지 75%의 이용자를 한쪽에 몰리게 만들어 진입로의 병목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 혼잡도가 높은 일부 지하철역에서 실제로 발생하는 현상이다. 탑승구 뒤쪽으로 수십 미터씩 대기 줄이 길어지면 승강장 전체가 마비되는 역효과를 낳는다. 해외 대도시 지하철역 실험에서도 양쪽을 모두 채워 이용했을 때 단위 시간당 수송 인원이 약 30% 증가한다는 분석도 있다.
무리하게 이동하는 개인의 조급함보다 전체의 안전과 물리적 수송 효율을 높이는 두 줄 서기가 옳은 방향이다.
[반대] 현실적 문화 존중해야…규제보다 유연한 이용이 답
에스컬레이터 두 줄 서기 강제에 반대하는 입장은 이미 사회적으로 단단히 정착된 합의라는 점, 이용자의 현실적인 편의성 등을 강조한다. 바쁜 일상에서 빠르게 이동해야 하는 이용자에게 한쪽 길을 내어주는 문화는 20년 이상 유지돼온 일종의 배려와 에티켓 같은 것이다. 최근 설문조사에서도 국민의 과반인 50.1%가 한 줄 서기를 지지했다. 이들 대다수는 ‘급한 사람을 배려하기 위해서’를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오랜 기간 형성된 시민들의 자율적 습관을 정부가 일률적 캠페인이나 규제로 억제하려는 것은 오히려 현장의 혼란과 이용자 간 갈등만 부추길 수 있다. 급한 승객이 비켜주지 않는 앞사람과 언쟁을 벌이거나 무리하게 틈새를 밀치고 지나가다 더 큰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출퇴근 시간대 열차 도착 시각에 맞춰 1초가 아쉬운 시민들에게 무조건 정지 상태로만 이동하라는 지침은 대중교통 이용의 현실을 외면한 탁상행정에 가깝다.
계단이나 엘리베이터 등 보조 이동 수단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대다수 지하철 역사에서 두 줄 서기를 일방적으로 강제할 경우 급한 용무가 있는 사람들의 이동권이 침해될 소지도 있다. 모든 역사가 충분한 계단을 원활하게 제공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부터 해결해야 한다. 과거 정부가 2007년부터 두 줄 서기 운동을 추진했다가 시민들의 외면과 실효성 부족으로 2015년 공식 중단했던 역사적 경험 역시 정책의 한계를 증명한다.
해외 주요 도시에서도 획일적인 두 줄 서기를 법으로 강제하기보다는 현장의 혼잡도나 시간대에 따라 유연하게 운영하는 추세다. 안전은 손잡이 잡기와 뛰어다니지 않기 같은 기본 수칙을 준수하도록 유도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에스컬레이터 본래의 편의성을 가로막는 무리한 두 줄 서기 강제는 타당하지 않다.
[생각하기] 안전과 효율 아우르는 지혜로운 대안 모색
에스컬레이터 이용법을 둘러싼 논쟁은 안전이라는 절대적 가치와 배려라는 현실적 편의가 충돌하는 지점에 있다. 과학적 데이터와 사고 통계는 두 줄 서기의 필요성을 강력히 뒷받침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형성된 시민들의 행동 양식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 또한 쉽지 않은 문제다. 획일적인 강제보다는 혼잡도와 시간대, 지하철 역사의 구조적 특성 등에 맞춘 유연한 정책 설계가 요구된다.
출퇴근 시간대와 일반 시간대의 운영 지침을 다르게 가져가거나 역사 내 계단 확충 등 보조 이동 수단을 강화하는 정교한 행정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승객들의 원활한 이동을 위해 정기적인 설비 점검과 보강 작업도 병행해야 한다. 무작정 시민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일률적인 잣대를 대기보다는 에스컬레이터 문화를 함께 만들어 간다는 인식을 갖고 사회적 합의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다른 사람을 재촉하지 않고 양보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확립해 나가는 동시에 안전과 효율이 조화를 이루는 지혜로운 합의점을 찾아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