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실제 가족의 일상을 보여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인기다. 부모가 목소리 높여 싸울 때 한쪽에서 두려움에 떠는 자녀들의 모습도 고스란히 전파를 탄다.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 자란 자녀에게는 자칫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이로 인해 온 가족이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딥스>는 부모의 잘못된 양육 태도에 마음을 굳게 닫은 다섯 살 남자아이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딥스>는 1996년 국내에 처음 소개됐다. 이 책이 오랫동안 읽히면서 사랑받는 이유는 분명하다. ‘어린이는 어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느끼고 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인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의 교수 버지니아 M. 액슬린은 심리적·정서적 어려움을 겪는 아동을 위한 놀이치료 분야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어린이의 마음을 여는 독특한 치료법을 <놀이치료>라는 책에 소개해 세계적인 호평을 얻었다.
이 책은 액슬린이 직접 치료한 사례를 바탕으로 썼다. 평소 입을 꾹 닫고 있던 딥스가 목요일마다 놀이치료실에 와서 마음껏 떠들고, 신나게 뛰놀고, 한껏 감정을 표출하는 장면에서 어린이의 세계가 얼마나 정교하고 영특한지 놀라게 된다. 딥스를 낳은 뒤 외과 의사 일을 그만둔 어머니는 두 살밖에 안 된 아들에게 지식을 가르치려 애쓴다. 뛰어난 과학자인 아빠는 딥스가 창문을 열고 “공기야! 들어와서 우리와 함께 있어”라고 하자 “사람에게만 말을 하라”고 딱딱하게 가르친다.
딥스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
딥스가 창문에서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 만큼 자란 나무를 아빠는 제이크 아저씨에게 잘라버리라고 말한다. “그 나무는 내 친구이고 나는 그 가지가 필요해요. 자르지 마세요”라고 부탁하지만, 아빠는 나무를 자르는 것은 물론 떨어지지 않도록 창문에 두꺼운 창살을 단다. 그런 부모에게 마음을 닫은 딥스가 방 안에 틀어박혀 있자 부모는 아들의 지적 발달에 문제가 있다고 단정해버린다.
다섯 살이 된 딥스는 2년이나 다닌 사립유치원에서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고 한쪽에 가만히 앉아 있곤 했다. 집에 갈 때가 되면 가기 싫다며 선생님을 할퀴고 소리 지른다. 유치원은 딥스를 퇴학시키기에 앞서 전문 상담가에게 보내기로 결정했고, 그렇게 해서 액슬린 박사와 딥스가 만나게 됐다.
놀이치료는 아이가 놀이를 통해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도록 돕고, 치료자가 이를 평가하거나 비난하지 않은 채 아이의 마음을 이해해가는 상담 방법이다. 매주 목요일 딥스는 액슬린 박사의 놀이치료실을 방문해 모래 위에서 각종 놀잇감을 갖고 놀며 마음속 이야기를 토해낸다. 첫날 딥스는 “싫어, 잠긴 문 싫어, 잠긴 문!” 하고 소리 지르며 울먹인다. 액슬린 박사는 그저 “딥스는 문 잠그는 걸 싫어하는구나”라고 말할 뿐이다.
놀이치료로 회복한 딥스
딥스는 놀잇감을 통해 억눌린 감정을 표현하며 조금씩 마음을 회복한다. 읽기와 쓰기, 그림 그리기, 작사·작곡까지 해내며 뛰어난 재능도 발휘한다. 밖에서는 유능할지 몰라도 자녀의 마음은 읽을 줄 몰랐던 딥스의 부모는 지능과 감정이 동시에 성장해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놀이치료가 아니었더라면 부모는 영재 아들의 가능성을 묻어버릴 뻔했다. 이야기는 영재학교에 다니는 열다섯 살 딥스가 억울하게 퇴학당한 친구를 대변해 학교에 보낸 항의 편지 내용을 소개하는 것으로 끝난다.
가족 안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이해와 도움을 통해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하다. 퇴학 외에 길이 없을 것 같았지만 놀이치료로 마음의 응어리를 푼 딥스가 먼저 다가가면서 부모도 잘못을 깨닫고 딥스를 사랑으로 품게 됐다. 아이를 이해하는 일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딥스>는 잘못 엉킨 실마리만 풀면 아이가 멋지게 질주할 수 있음을 통쾌하게 보여준다. 요즘 우리나라도 놀이치료를 비롯한 심리상담 분야가 활성화돼 있다. 무료로 상담받을 수 있는 지역별 아동청소년 정신건강복지센터 등 다양한 제도가 마련돼 있으니 필요할 때 이용하는 지혜를 발휘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