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의 공짜는 싫다"  지속성장 택한 스위스 국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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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의 공짜는 싫다" 지속성장 택한 스위스 국민들

생글생글2016.06.09읽기 6원문 보기
#기본소득#국민투표#직접민주주의#보편적 복지#근로의욕 저하#경제성장 잠재력#최저임금제#Pay-go 원칙

스위스 국민이 월 300만원(18세 이상 성인 기준)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내용의 기본소득 도입안을 거부한 것은 ‘당장의 공짜’보다는 ‘지속 가능한 미래’를 선택한 결과로 풀이된다. 그만큼 스위스 국민의 시민의식과 경제지력이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공짜는 결국 그만한 대가를 치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얘기다. 이번 스위스 국민투표 결과는 핀란드·네덜란드를 중심으로 한 유럽 국가들은 물론 기초연금 등 기본소득 확대가 이슈가 되고 있는 다른 나라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인간 존엄 위해 기본소득이 필요하다”스위스 기본소득 찬성론자들은 인간의 존엄을 향상시키려면 기본소득의 보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이번에 기본소득 도입안을 국민투표로까지 성사시킨 캠페인 단체 BIS는 2013년부터 서명운동을 벌여 13만명의 서명을 받아냈다. BIS가 주장한 기본소득은 월 2500스위스프랑(약 300만원·성인 기준)이다. 이 액수는 스위스의 월 최저생계비(2219스위스프랑)를 기준으로 산출한 금액이다. 이번 스위스 기본소득 제도는 기존 복지 혜택을 통합해 복지 하한선을 설정한 성격이 짙다. 추가로 300만원의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게 아니라 이미 혜택을 받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복지를 ‘단일화된 보편적 복지’로 바꾸자는 것이다.

스위스 정부는 BIS가 요구하는 보편적 복지를 시행하는 데 연 2080억프랑(약 250조원)이 들 것으로 추정했다. 현재 지출 규모의 3배에 달하는 액수다. 이런 이유로 스위스 국가위원회는 국민투표에 앞서 반대 157표, 찬성 19표의 의사를 밝혔다. “유토피아적 위험한 실험이다”기본소득 반대론자들은 과다한 비용 부담으로 국가경제의 성장 잠재력이 악화된다고 지적한다. 특히 높은 기본소득이 보장되면 국민의 근로의욕이 저하되어 기업의 구인난이 심화되고 이는 궁극적으로 경제시스템 자체를 망가뜨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의회도 “이런 기본소득법이 시행되면 다른 나라에서 많은 이민자가 국경을 넘어 스위스로 들어올 것”이라며 “이는 유토피아적 위험한 실험”이라고 경고해 왔다. 스위스국민당 소속 로치 스탬 의원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스위스가 섬이었다면 이론적으론 가능할 수 있지만 스위스의 국경은 열려 있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스위스는 앞서 세계 최고 수준의 최저임금제 도입 안건을 76%라는 압도적 비율로 거부했다. 스위스 국민의 이번 선택은 핀란드와 네덜란드가 이미 올해 초부터 기본소득 시범사업을 하고 있는 것과 뚜렷이 대조된다. 직접민주주의 흔적 스위스 국민투표인구 810만명의 소국인 스위스는 여러 면에서 독특한 나라다.

스위스는 미국처럼 연방국가다. 주(州)에 해당하는 26개 칸톤(Kanton)으로 국가가 구성되고, 공식 언어만도 4개에 달한다. 대통령은 7명의 연방각료(장관)가 1년씩 돌아가며 맡는다. 스위스는 아직도 직접민주주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스위스의 직접민주주의는 지역 간 교류가 쉽지 않은 산악지대의 특수성에서 비롯됐다. 직접 비밀투표의 근대적인 국민투표가 시행된 것도 스위스가 처음이다. 지금도 헌법·법률의 최종 결정, 국가의 주요 정책을 놓고 스위스는 1년에 2~4번 국민의 의견을 묻는다. 헌법 개정의 경우도 18개월간 유권자 10만명의 서명을 받으면 국민투표에 올릴 수 있다.

2014년 국민투표의 경우 건강보험의 낙태 지원 중단은 부결된 반면 이민자 쿼터 제한은 가결됐다. 이번에 BIS가 기본소득 안건을 국민투표로까지 성사시킨 것도 스위스의 이런 독특한 정치 형태에 기인한다. ‘정치 형태는 국민이 감당할 수준까지’라는 말이 있다. 이번 스위스 국민투표는 스위스에서 왜 직접민주주의가 꽃을 피웠는지를 다시 한 번 곱씹어보게 한다. 보편적 복지가 ‘뜨거운 감자’인 우리나라에서 똑같은 국민투표가 치러졌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성급한 추측일지 모르지만 아마 정반대의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페이고 원칙을 아시나요?

…법안발의 땐 재원 확보안도 의무적으로 마련해야 Pay-go(페이고)는 pay as you go에서 나온 표현이다. Pay as you go는 ‘현금으로 지급하다’ ‘번만큼 쓴다’는 뜻이다. 따라서 페이고 원칙은 재정을 지출해야 하는 새로운 사업을 추진할 때 재정여건에 맞춰 기존 사업의 지출을 줄이거나 재원대책을 의무적으로 마련해야 하는 시스템을 일컫는다. 이는 재정건전성을 높이기 위한 재정준칙의 하나다. 페이고는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에 빠져 재정건전성을 해치는 무분별한 법안의 발의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하지만 정책의 유연성이 떨어지고, 긴급상황시 정책의 순발력이 둔해질 수 있다는 것은 페이고 원칙의 단점이다. 페이고 정책은 경기효과가 적은 일반 경직성 부문은 과감하게 예산을 삭감하고 대신 경기진작 효과가 큰 쪽에 투자를 몰아준다는 것이 기본 메커니즘이다. 대다수 선진국은 인기영합성 포퓰리즘 정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재정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이 원칙을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재정건전성 강화를 위해 페이고 원칙을 도입, 2010년 5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론 이 원칙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과다한 복지비용 지출로 지방자치단체를 비롯한 곳곳에서 재정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이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결과다. 미국은 1990년 재정 건전화를 위해 페이고 원칙을 도입했다가 2002년에 폐지했다. 하지만 재정 문제가 다시 불거지자 2010년 2월 관련 법안을 다시 부활시켰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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