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사망한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58)은 조국에 어떤 명암을 남겼을까? 14년간 절대권력을 휘둘렀던 만큼 그의 통치 방법에 대한 찬반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그의 죽음을 통곡하는 국민이 있는가 하면 환호성을 지르는 국민도 많다. 차베스가 떠난 베네수엘라의 미래는 오늘을 진단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석유사회주의 경제의 딜레마 베네수엘라 경제력은 석유에서 나온다. 세계 최대 매장량과 세계 3위 산유량을 자랑한다. 한국은 자동차 선박 반도체 석유화학제품 등을 열심히 만들고 수출(2011년 수출액 5560억달러)해서 외화를 벌어들이지만 베네수엘라는 석유수출로만 연간 외화의 95%(900억달러)를 벌어들인다.
차베스는 1998년 집권하면서 ‘석유사회주의(oil socialism)’를 선언했다. “석유는 국민의 것”이라며 다국적 기업이 운영하던 석유회사를 국유화했다. 차베스의 석유정치와 석유외교의 서막은 이때 올랐다. 차베스 정부는 돈에 관한 한 걱정이 없었다. 정부 예산의 50%를 국유화한 석유판매 대금으로 충당했다.
차베스는 가난한 나라의 유권자 마음을 잡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막대한 예산과 통치자금을 빈민지역 무료병원과 무료학교, 무료의료 등 빈민 복지에 썼다. 이를 통해 차베스는 빈민층으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외국 자본과 일부 계층에게만 혜택을 준 오일머니(oil money)를 복지에 쏟아부은 전례는 베네수엘라엔 없었다. 이로 인해 차베스 집권기간 극빈층이 절반으로 줄었다. 이 같은 소득분배 정책으로 베네수엘라의 지니계수는 2011년 기준으로 0.39에 불과했다. 지니계수는 ‘0’에 가까울수록 소득격차가 적은 것을 의미한다.
#차베스 1인에 의한 정치 베네수엘라 정치는 차베스에 의한 정치라고 부를 만했다. 석유국유화 등 경제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차베스는 절대권력이 필요했다. 1998년 대통령이 된 뒤 2000년 임기 6년을 핵심으로 하는 개헌을 단행했다. 임기가 만료돼 오자 2006년 차베스는 연임 규정을 없애는 국민투표를 두 번이나 실시해 두 번째 투표에서 연임 철폐를 이뤄냈다.
권력을 공고히 한 차베스는 남미 반미(反美)전선을 이끄는 아이콘이 됐다. 이 전선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그는 석유를 이용했다. 쿠바 등 17개 카리브해 연안국가에 원유를 싼값으로 공급했다. 해마다 70억달러가 지원됐다. 쿠바에만 연간 10만배럴씩 연간 30억~40억달러어치를 줬다. 브라질 삼바축제, 멕시코 빈민 눈수술에도 오일달러를 보냈다.
이를 통해 그는 미국을 필두로 한 서방국가를 철저하게 배격했고 오일머니로 조성한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과 볼리바르 동맹을 내세워 미국과 대척점에 섰다. 미국땅 뉴욕 유엔총회에서 공개적으로 부시 미국 대통령을 악마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미국과 서방을 상대로 싸우는 차베스의 모습은 “베네수엘라는 자립적이다” “자부심을 느낀다”는 반응을 이끌어 내며 신(神)이 되어 갔다.
차베스가 남긴 유산은 겉보기엔 화려하고 선하지만, 이면을 보면 베네수엘라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는 평가를 듣는다. 부유한 사회주의 국가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국민의 50%가 빈곤층이다. 오일머니로 빈민구제에 나섰지만 국가복지의존형 국민만 양성했다는 지적이다. 국가가 물고기를 직접 잡아줬을 뿐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치지도 않았고, 국민 스스로도 그 방법을 터득하려 하지 않았다.
과도한 복지에 예산이 대부분 들어가다 보니 재정압박도 심해졌다. 복지는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됐다.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20%에 육박할 만큼 심각해졌다.
#'한강의 기적'은 없다 차베스는 누구인가
또 스스로 먹고사는 중산층을 길러내지도 못했고, 미래 세대를 먹여 살릴 산업기반이나 기술력도 확보하지 못했다. 경제개발을 위해 비록 독재를 했지만 ‘한강의 기적’을 일궈내고 미래 산업기반을 탄탄하게 다진 박정희 대통령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대목이다. 석유가 펑펑 쏟아지는 베네수엘라보다 원천자원이 하나도 없는 한국이 더 잘사는 차이이기도 하다.
차베스는 필요할 때마다 국민투표나 개헌으로 자신의 지위를 확증받는 일종의 국민투표-독재체제로 향했다. 사회주의나 전체주의 체제의 권력자들은 정치와 경제독재를 위해 국민투표나 선거라는 합법성을 갖췄다. 차베스는 국민의 소득(복지) 등 모든 분야를 결정해야 했고 더 많은 권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