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박정원 한진해운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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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박정원 한진해운 사장

오형규 기자2007.03.12읽기 6원문 보기
#한진해운#해운공사#해운업#수출입 화물#항만#CEO#ROTC#화학공학

합기도·복싱으로 단련된 '바다 사나이'"이상은 높게 마음은 넓게 가져라"

박정원 한진해운 사장(62)을 만나기 전엔 선입관이 있었다. 합기도와 복싱으로 단련한 '35년 바다 사나이'란 경력 때문에 '보나마나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거친 남성이겠지'란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실제 접해본 박 사장은 정이 넘치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단정한 옷 차림에 날카로운 눈매는 단순한 '바다 사나이'가 아닌 세계적인 해운업체를 이끄는 CEO(최고경영자)임을 실감케 했고,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박식함에는 간단치 않은 '내공'이 느껴졌다. 하지만 박 사장의 유년시절은 그렇게 평온하지만은 않았다.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되던 해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부산으로 피난을 가야만 했다.

고단했던 피난생활을 접고, 다시 서울로 올라온 건 그가 초등학교 5학년 되는 해였다. 사투리가 익숙해진 그는 '서울 깍쟁이'들과 좀처럼 친해지지 못했다. '촌놈' 박정원은 요즘 말로 '왕따'였던 셈이다. 외로움에 힘겨워하던 그는 자전거를 자주 탔다. 그러던 어느날, 1~2살 정도 나이 많아 보이는 형이 박 사장의 자전거를 빼앗아 달아나는 일이 벌어졌다. 한참을 쫓아가 붙잡았지만, 자전거를 쉽게 내줄 태세는 아니었다. 한참 옥신각신하는데, 마침 길을 지나던 대학생이 자초지종을 듣고 해결해줬다. 하지만 박 사장의 마음 속엔 자전거를 빼앗은 이름 모를 형에 대한 미움이 싹텄다. 이것이 그가 무술을 익히게 된 계기가 됐다.

박 사장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권투 도장을 찾았다. "그 형을 한번 혼내려주려고 권투 도장에 들어갔어요. 당시만 해도 권투도장엔 선수지망생이 많았어요. 스파링하면서 엄청 맞았지요. 그런데 아프지가 않더라고. 오히려 맞을수록 '저 놈이랑 다시 대련해야지'란 생각이 들더군요. 열심히 했더니 관장이 저한테 '너 권투선수 될 수 있어.키워줄게'라고 할 정도까지 되더군요. 자전거 뺏은 형과는 이후 아주 친해져서 지금도 자주 만나요. 그 형도 현재 유명기업 CEO로 일하고 있습니다. "권투 경험은 그에게 도전정신과 승부욕을 일깨워줬다.

"꼭 이기고 싶다는 신념이 생기더라고. 공정한 사각의 링에서 실력으로 맞붙는 묘미도 알게 됐고요. 이런게 사회생활 하는데 많은 자극제가 됐어요. 제가 뭐 하나에 심취하면 끝까지 파고드는 스타일인데 아마 그때부터 그랬던 거 같아요. "고등학생이 되어선 합기도로 종목을 바꿨다. 권투와 합기도로 단련한 '무시무시한 학생'이었지만 싸움은 하지 않았다. 제대로 운동한 사람들은 싸움을 피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박 사장의 학창시절은 화려했다. 무술뿐 아니라 당구와 바둑도 수준급이었다. 학창시절 '3·3·3'(합기도 3단, 당구 300점, 바둑 3급)을 달성했을 정도였다. '문제아'가 될 법도 하지만, 박 사장은 공부도 곧잘했다.

비결은 '절도 있는 생활'이었다. 두뇌와 마음, 신체의 리듬에 따라 놀 때와 공부할 때를 확실하게 구분지으면 된다는 것. 엄했던 아버지의 훈육도 가끔씩 흔들리던 박 사장의 마음을 다잡아줬다.

고교시절 그의 목표는 해군사관학교에 들어가 해군 제독이 되는 것이었다. 이과를 선택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당시 사관학교는 이과였다). 당시 담임도 "넌 운동도 잘하고 의협심도 있으니 잘 생각했다"며 OK했다. 하지만 부모님 반대로 꿈을 접어야 했다. 박 사장은 "사관학교를 포기한 뒤 후회를 참 많이 했다"며 "대학졸업후 군(ROTC 6기) 장교로 복무할 때도 군대생활이 적성에 맞아 장기복무를 할까 고민도 했었다"고 말했다. 해군사관학교 대신 한양대 화학공학과에 입학한 박 사장은 전공을 살려 공부를 계속할 계획이었다. 제대 후 유학길에 오르기 위해 미국 대학에 입학 허가까지 받았다.

그러던 중 신문에 난 '해운공사(한진해운의 전신) 신입사원 모집공고'가 박 사장의 인생 항로를 완전히 바꿨다. 당시 해운공사는 7명 모집에 1000명이 몰릴 정도로 인기 직장이었다. 합격통지서를 받은 박 사장은 입사 후 3개월 동안 재래식 배를 타고 일본과 미국의 주요 항만을 둘러보고, 수출입 화물을 선적하는 일을 체험했다. 그때 맺은 해운업계와의 인연은 3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박 사장은 "3개월 동안 선원들과 함께 배에서 생활하는 것과 수출입 화물을 선적하는 업무 모두 마음에 들었다"며 "특히 절도 있는 생활에 매료돼 유학의 꿈은 곧바로 접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과 출신들이 득실대는 해운업계의 마케팅 영업 분야에서 화학공학 전공자가 두각을 나타내기는 쉽지 않은 일. 박 사장은 이를 악물었다. "입사하고 얼마 안 되어 내가 인문계 출신 동기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해운공부를 본격적으로 했죠. 웬만한 건 달달 외웠습니다. '자강불식(自强不息)'이란 말이 있잖아요. 쉬지 않고 노력하면 반드시 성취한다는 얘기에요. 제가 그랬어요. "박 사장은 35년 전 자신처럼 자기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직원들을 참 좋아한다고 했다. "이런 직원들이 '우리 회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인물'로 성장한다"고도 말했다. 그는 성공하는 또 다른 비결로 '행동'을 꼽았다.

"옛 속담에 '열두 가지 재주 있는 사람이 저녁거리가 없다'는 말이 있어요. 1000개의 아이디어가 있어도 행동에 옮기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얘기지요. 실행이 개인은 물론 기업의 미래를 결정짓는 겁니다. 기회는 기다린다고 오는 게 아니라, 스스로 찾아야 하는 거예요. "올해 우리 나이로 63세인 박 사장은 앞으로 10년은 더 한국 해운업계 발전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했다. 10년 뒤엔 평소 관심이 많은 동양철학과 동양의학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 생각이란다. 박 사장이 아들이나 젊은 임직원에게 자주 들려주는 조언은 바로 '이상은 높게,마음은 넓게'다.

"이상을 높게 가지라는 건 신념을 갖고 끊임없이 노력하라는 얘기고, 마음을 넓게 가지라는 건 남을 배려하라는 의미예요. 자신의 몸을 낮추는 건 기본입니다. "오상헌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 ohyea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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