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있는 수많은 약국 중 한국을 대표하는 약국 한 곳을 꼽으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울 종로5가에 있는 보령약국을 선택할 것이다.
1957년 문을 연 보령약국은 개업 5년 만에 국내 최대 규모의 약국으로 성장했다.
김승호 보령제약 회장(75)은 26살의 나이로 보령약국을 개업,보령제약으로까지 발전시킨 제약업계의 입지전적 인물로 통한다.
김 회장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가 약과 인연을 맺은 것이 숙명처럼 들린다.
충남 보령(보령약국이란 상호도 고향 지명에서 딴 것)에서 태어난 김 회장은 아버지가 양조장을 운영한 덕분에 어린 시절을 유복하게 보냈다.
그러나 양조장 사업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이에 김 회장의 큰 형은 동네에 대창약국이라는 조그마한 약국을 개업했다.
"그때는 학교가 끝나면 매일 약국에 가서 살다시피 했어요.
진열대에 놓인 각양각색의 약이 어찌나 신기하던지."
한 번 맺어진 인연은 계속 이어졌다.
김 회장은 초등학교 졸업 후 서울 숭문학교에 입학,상경하게 됐는데 그때 거처로 정한 곳도 친척 형이 운영하던 약국 2층의 다다미 방이었다.
나중에 백제약국으로 유명해진 종로5가의 홍성약국이 바로 그곳이다.
김 회장은 "대창약국이 약에 대한 호기심을 일깨워줬다면 홍성약국은 약의 의미를 접하게 해준 곳이었다"고 회상했다.
어린 시절부터 약과 친해졌기 때문일까,김 회장은 1957년 봄 군대에서 제대한 뒤 약국 개업을 결심했다.
"일단 약국을 열기로 마음을 먹긴 했지만 변변한 경험도 자본금도 없는 상태였어요.
가진 것이라곤 군대에서 모은 돈으로 근근이 마련한 서울 돈암동 집 한 채가 전부였어요.
결혼한 지 채 1년이 안된 아내를 설득해 돈암동 신혼집을 팔아 300만환을 마련했죠."
김 회장은 300만환을 손에 쥐고 서울 시내 목좋은 곳을 찾아 다녔다.
그러다 우연히 종로5가의 허름한 문방구에 시선이 멈췄다.
낡고 볼품없는 건물이었지만 약국 자리로는 그만한 곳이 없다 싶었다.
김 회장의 예상은 적중했다.
보령약국은 개업한 지 5년 만에 국내 최대 규모 약국으로 성장했다.
한때는 '종로5가를 지나는 행인 다섯 중 한 명은 보령약국 손님'이란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보령약국이 이처럼 대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김 회장 특유의 부지런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엔 도매상들이 약 유통시장을 독점하고 있었어요.
소매약국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철저한 서비스 정신으로 무장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