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이기태 삼성전자 사장
한국의 CEO 나의 청춘 나의 삶

(3) 이기태 삼성전자 사장

박주병 기자2006.07.09읽기 6원문 보기
#삼성전자#삼성 애니콜#무선통신사업#휴대폰#CEO#경영진#사업부장#브랜드 전략

이기태 삼성전자 정보통신 총괄사장은 1948년생으로 대전 보문고와 인하대 전기공학과를 나왔다. 평범한 학벌에 석사나 박사 학위도 없다. 1973년 삼성전자 라디오과에 입사해 줄곧 음향기 관련 엔지니어로 일했다. 조금 괜찮은 경력이라곤 1985년 회사의 주력 생산품인 비디오 생산부장을 지낸 것 정도다. 이사 승진도 그다지 빠르지 않았다. 오히려 상사들과 잦은 마찰을 빚으며 수 차례 사표를 낸 전력을 갖고 있을 정도로 직장생활은 평탄치 않았다. 33년간 삼성전자를 다니는 동안 그 흔한 해외연수나 유학도 한번 간 적이 없다. 그러고도 이기태 사장은 오늘날 삼성 애니콜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우는 데 일등 공신의 역할을 해냈다.

글로벌 인재들이 득실대는 회사 내에서 5년째 최고경영자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그에겐 무슨 비법이 있는 걸까.이 사장은 투박하고 거침 없는 화술을 구사한다. 거두절미에 단도직입적인 스타일이다. 상대방의 논리보다 자신의 직관을 더 믿는 경향도 있다. 당연히 고집스러워 보인다. 이 때문에 초급 임원시절엔 "제멋대로이고 안하무인"이라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1992년 임원이 돼 시작한 골프도 그의 성향을 잘 보여준다. 골프 클럽을 한번도 잡아보지 않은 상태에서 첫 라운딩을 했다. 전날 '골프 에티켓'관련 책을 한 권 구해 읽었을 뿐이다. 동반자들이 얼마나 황당해했을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 후로도 그는 연습장엔 간 적이 없다고 한다. "아니,축구 시작할 때 연습장에 따로 가서 배웁니까. 그냥 차면 되는거죠. "대전 보문고 시절 이 사장의 별명은 '깜빡이 없는 불도저'였다. 그야말로 좌충우돌이라는 얘기였다. 축구의 거친 몸싸움을 좋아했고 동네 '주먹'들과 '맞짱'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배짱도 두둑했다. 한 여름이면 통 반바지에 검정 고무신을 신고 죽어라고 공만 찼다. 그래도 성적은 상위권을 유지했다. 3형제 중 막내로 자란 그의 가정은 윤택하지 못했다. 등록금을 걱정할 정도로 가난하지는 않았지만 어린 나이에 돈벌이에 골몰하던 날이 많았다. 자유롭게 살기 위해선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1967년 인하대 전기공학과에 입학했다. 장래 희망은 여전히 사업가였고 축구도 계속했다. 삼성전자에 입사한 것이 1973년 7월. 당시 입사 동기생들이 삼성화재 이수창 사장과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이상대 사장이다. 삼성전자 내에서 라디오과-음향1과-음향품질관리실-비디오 생산부를 거치며 착실하게 실력을 쌓았다. 일단 시작한 일은 끝장을 봤다. 빠른 일처리와 확실한 마무리로 인정도 받았다. 물론 평탄한 과정을 거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아마도 대한민국의 현직 CEO 중 가장 많이 사표를 냈던 사람일 것이다. 과장-차장-부장 때 수시로 사표를 던졌다. 자신이 하는 일에 조직이 부당하게 간섭한다고 생각되면 미련 없이 결행했다.

1985년 비디오 사업부장을 할 때는 강원도로 도망가 20여일이나 버틴 적도 있었다. 이 사장의 밀어붙이기식 일처리와 고집 때문에 상사들도 곤욕을 치렀지만 자신도 괴롭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직장생활 최대의 스트레스로 주저없이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꼽았다. "하루에도 몇번씩 되뇌었습니다. '지금 저 사람들이 나의 영원한 상사나 부하가 아니다. 이 순간이 지나면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고 말입니다. "1991년 9월 마침내 이사보가 됐으나 아직 그의 무대는 열리지 않았다. 수백명 임원 중 한 사람일 뿐이었다. 다시 몇 해가 흘러 1994년 1월 무선사업(DATA)부문 이사로 발령이 났다.

사람들은 "이기태가 물 먹었다"고 수군거렸다. 사실 무선통신은 비디오나 팩스사업부에 비해 홀대받고 있었다. 매출은 빈약했고 장래성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것은 또 다른 기회이기도 했다. 그는 특유의 저돌적인 스타일로 스스로 사업을 꾸리고 확장해 나갔다. 윗선에서도 이 사장에게 많은 재량과 권한을 주었다. 한번 알아서 해보라는 분위기였다. 애니콜 10년 신화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가볍고 튼튼하고 성능과 디자인이 좋은,그야말로 완벽한 휴대폰을 만드는 것이 그의 지상과제였다. '깜빡이 없는 불도저의 돌진'은 1993년 이건희 회장이 선포했던 신경영의 정신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1995년 이 회장은 무선전화기 품질에 문제가 있다는 보고를 듣고 시중에 나가 있는 모든 제품들을 수거해 불태우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해 3월9일 구미사업장에는 500억여원 상당의 무선 전화기 15만대가 검붉은 연기를 뿜어내며 잿더미로 변했다. "그때 과감하게 버리지 못했더라면 오늘날의 애니콜은 없었을 것입니다. 전화기를 휘어감은 불길 속에서 우리 모두는 미래 희망의 불씨를 보았습니다. "1995년 100만대에서 출발해 지난해 1억여대를 판매하기까지 그는 휴대폰 판매규모를 100배나 키웠다. 한국 수출품으론 드물게 고가에 팔리는 애니콜의 글로벌 브랜드 가치는 50억달러 이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고 말한다. 화려한 외양의 껍질을 들춰보면 여전히 부족함과 아쉬움투성이란다. 그는 부하직원들에게도 불만이 많다. "평생직장 시대가 변했다고 하지만 저는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왜 직장을 자신의 평생 일터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까? (회사에서) 잘리고 나면 아무 것도 가져갈 것이 없는 것이 월급쟁이의 운명입니다. 회사를 위해 일하지 말고 자신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돈(월급)은 회사가 주지만 꿈은 아무도 주지 않습니다. " 조일훈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 ji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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