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대기업 경성방직 광목시장서 일본과 경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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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대기업 경성방직 광목시장서 일본과 경쟁하다

생글생글2017.01.19읽기 5원문 보기
#경성방직#민족자본#경제독립운동#물산장려운동#해외 직접투자#규모의 경제#반민족행위자#삼양그룹

김정호 교수의 대한민국 기업가 이야기

(2) 김성수·김연수 형제와 경성방직

서울 영등포역 앞 지하도를 걷다 보면 타임스퀘어 쇼핑몰에 이른다. 단일 쇼핑몰로는 아시아 최대 규모다. 원래 경성방직 공장이 있던 곳인데 경방필백화점을 거쳐서 지금의 건물이 들어섰다. 지금도 쇼핑몰 1층 밖으로 나가면 <경성방직 사무동>이 유적으로 보존돼 있다.

■ 기억해 주세요^^1919년 청년 김성수는 전국의 부자들을 설득해 민족자본을 모아 경성방직을 설립해요. 1956년엔 동생 김연수가 경성방직에서 갈라져 나와 지금의 삼양그룹을 창립하죠.영등포 타임스퀘어의 역사는?경성방직은 한민족 최초의 대기업이었다. 1919년 3·1 만세운동의 산물이기도 했다. 청년 김성수는 만세운동의 열기를 경제독립운동으로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쏟아져 들어오는 일본제 광목(면직물)에 맞설 조선제 광목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경주 최부자 등 전국 각지의 유지를 설득해 자본을 모았고 경성방직을 설립했다. 민족자본으로 세운 조선인 최초의 대기업이었다.경제독립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김성수는 인도 독립운동의 주역인 간디와 같았다. 다만 간디는 가내 수공업을 운동의 수단으로 택했던 반면 김성수는 일본에 필적하는 현대식 대기업 설립을 택했다.그러나 김성수는 비즈니스에는 별로 소질이 없었던 듯하다. 모집한 자본을 사업을 시작해보기도 전에 다 잃을 정도로 실패를 겪는다. 공장을 완성한 후에도 실적은 부진했다. 김성수는 결국 이 회사의 경영을 동생인 김연수에게 맡긴다. 김연수는 이미 고무신 장사를 성공시켜 기업가적 능력과 소질을 보이고 있었다. 경성방직의 경영을 동생에게 넘긴 김성수는 동아일보와 보성전문(후일 고려대학교) 등 계몽운동에 전념하게 된다.조선 떠나 만주서 창업

김연수로 경영자를 교체했는데도 경성방직의 광목은 잘 팔리지 않았다. 조선인 소비자들이 일본제만을 선호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동아일보 주도로 물산장려운동을 펴게 되고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경성방직산 태극성 광목에 대한 매기(買氣)도 살아났다.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시장도 형성됐다. 서울 부산 등 남부와는 달리 평양, 의주 등 북부 지방에서는 경성방직 제품의 인기가 높아졌다. 만주 지방에서는 불로초라는 상표를 붙여 출시한 경성방직 제품이 일본제 매출을 앞서기 시작했다. 중국인들의 반일 감정이 상당히 작용했다고 한다. 1935년에는 방적(실뽑기) 사업도 시작해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간다. 만주에서의 매출이 늘어나자 김연수는 아예 만주 현지에 생산시설을 짓기로 한다. 1939년 만주의 소가둔(蘇家屯)에 남만방적을 세웠다. 경성방직이 100% 투자했으니 조선인 해외 직접투자의 시초였던 셈이다.김연수는 농업의 현대화도 추진했다. 만주의 황무지를 개간해 현대식 농장으로 변화시켰다.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들에게 단비 같은 일자리였던 셈이다.1945년 8월15일. 일본 천황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한민족의 일원으로서 더없이 기쁜 일이었다. 그러나 사업적으로는 재앙이었다. 중국 공산당은 만주의 조선인 사업체들을 일본인의 것으로 간주해 몰수했다. 남만방적과 삼양사 농장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김연수는 남만방적의 조선인 기술자들을 데리고 38선 이남으로 돌아와야 했다. 마침 일본인 기술자들의 철수로 마비상태에 빠진 다른 방직공장들을 남만방적의 기술자들이 나서서 정상화시켰다고 한다.경방그룹과 삼양그룹으로 갈리다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kim.chungho@gmail.com그러나 김연수 본인은 반민족행위자로 지목돼 재판을 받았다. 경성방직 내에서도 노동자들의 배척을 받았다. 결국 그는 주식과 경영권을 포기하고 경성방직을 떠나게 된다. 그의 필생의 업적이던 경성방직도, 남만방적도 모두 잃은 것이다. 경성방직의 경영권은 급한 대로 매제인 김용완이 맡게 된다. 임시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결국 그 집안의 가업이 됐다. 타임스퀘어를 비롯한 경방그룹의 경영은 김용완의 3세가 맡고 있다.경성방직을 떠났다고 김연수가 사업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1956년 설탕업(삼양설탕) 진출에 성공했다. 이병철의 제일제당 등 선발주자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시장에 안착하는 데 성공한다. 그 후 수산물 가공업과 방직업으로도 사업을 확장한다. 지금의 삼양그룹은 그 정신과 유산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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