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을 보라!
하루가 멀다 하고 좁아지는 혈관, 뇌 주름 사이마다 쌓이는 먼지, 순환을 포기하고 몸속 어딘가에 응고되는 노폐물들, 우편함을 가득 채운 각종 세금 고지서들(게다가 납기일이 서로 다르기까지!)에다 엄습해오는 모든 사물과 갈등을 어떻게든 조율하여 아이는 무사히 키워야겠고, 친근하지는 않으나 밀착되다 못해 거기 매몰되고 마는 일상-이것들이 오늘 두개골까지 굳어버린 생활인으로서의 나를 이루는 결정(結晶)들이다. 써놓고 보니 한심하나 맘속 어딘가에서는 이렇게 변명한다-십년 전만 해도 나는 이렇게까지 최저는 아니었으며 나아가야 할 길과 뛰어들어야 할 거리가 어디인지, 뻗어야 할 손길과 그것이 닿아야 할 곳을 고민할 줄 알았다고. 지금처럼 슬며시 소액 입금이나 구매 후원 같은 행위로써 죄의식을 ‘땜빵’하며 숨어드는 소심인이 아니었다고. 소시민을 자청하다 정말 소심인이 되어버린 지 너무 오랜 세월이 흘렀으며, 과거에 알고 지내던 거의 대부분의 이들과 차마 연락하지 못하고 지내는 건 이 때문이기도 하다.
살다 보면 으레 그런 거라고 자조하다가 이 남자를 보았다. 그의 행동과 결론은 현실의 나로선 엄두를 낼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처음 보았을 때 그가 놓인 처지는 이랬다.
그러니까 가쁜 호흡과 삭아가는 심장에다 아내와 사별한 뒤 극심한 영양 불균형으로 몸이 비대해지기도 했고 문학인의 사망 기사에 촉각을 곤두세움으로써 얻어지는 직업병의 일종이겠으나 삶보다는 죽음에 더 관심 있는 남자, 지금처럼 사람의 육체와 정신에 스펙을 들이대는 세속의 기준으로 말하자면 전후좌우 잘나가는 남자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어쨌든 ‘박사’라고 불리며 신문 문화면 기사를 통으로 담당하는 이가 있다. 이 사람이 소설 전편을 통해 끊임없이 뭔가를 주장하는데, 어째 난감하다.
제목부터 단호하게 주장한다고 해서 처음에는 뭐 대단한 구호나 강령을 외치는 줄 알았지. 소설을 이룬 전체 문장의 상당량이 ‘……라고 페레이라는 주장한다’로 끝나건만 그 ‘……’ 안에 들어가는 내용이 대략 이런 것들이다. “아주 피곤했다고 페레이라는 주장한다” “정신 나간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고 페레이라는 주장한다” “꾸물거릴 시간이 없었다고 페레이라는 주장한다”. 아니 세상에 주장해야 할 현안들과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사건들이 지금도 얼마나 무수히 널려 있으며 날마다 기록을 갱신하는데 고작 이런 사소하고 내밀한 문제들을, 그나마 문제라고 부르기도 무엇한 것들을 힘주어 주장하는지. 이런 주장이라면 나도 백 마디쯤 할 수 있겠다……가 아니라.
집요하고 일관되게 반복 제시되는 그의 주장들은 이를테면 정말로 중요한 일들, 가리지 말아야 할 진실들을 주장할 수 없는 사회 환경에서의 역설적인 모습이었다. 그 환경이란 한 사회주의자 짐마차꾼이 자신이 파는 멜론에 피를 뿌리며 죽어갔다는 기사를 실을 수 없으며 모두가 침묵하는 것 말고는 사회에 대응하는 방법을 모르는 현실이었는데 가만,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 소설 속 배경은 분명 1930년대인데, 2012년을 살아가는 우리가 놓인 처지와 어쩌면 이토록 닮았는지, 권력과 그것을 휘두르는 사람들의 행태는 어째서 매번 짙은 기시감을 제공하는지.
개인적인 느낌과 인상 및 기억과 같은 것들을 끊임없이 중얼거리듯 주장하는 이 신문기자는 적당한 학력과 아내와의 추억과 현재 위치나 하는 일 등에 안주하며 그 자체로 살아 있되 무덤에 들어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나날을 보내다가 수습기자로 쓰고 싶은 청년을 만나지만 이때부터 인생이 꼬이기 시작하니, 청년은 작금의 사회에서 도저히 실을 수 없는 날선 비판을 첨부한 문인 부고 기사만 써서 들이밀고, 이 인간을 내쳐 말아, 고민하면서도 선임기자 페레이라는 일종의 중력에 끌리듯 그의 기사를 버리지 못하고 사비를 털어 원고료를 지급한다. 게다가 이 청년은 약간의 진상과 민폐 신공을 발휘하여, 페레이라와는 생면부지인 자신의 동지에게 은신처를 마련해주기 위해 도움을 요청하기까지. 이러한 과정을 거쳐 문화면 담당 기자였던 페레이라는 지금까지 자신을 이루고 있던 안온하고 순조(順潮)한 결정(結晶)들이 조각조각 떨어져 나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선택지는.
자아의 움직임에 굳이 ‘왜’를 설명하는 것은 철학자와 심리학자들이 하게 놔두자. 우리는 어떤 계기가 없어도 마음이, 손끝이 움직이기도 한다. 일상적으로 거쳐온 순간과 만남들이 모두 계기의 일부를 이루었으니까. 그러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면 길을 멀리 떠나와 돌아갈 데가 보이지 않을 수도 있으며, 지금까지 어른들 말 잘 듣고 착하게 살아온 나란 인간이 대체 무엇이었는지 한동안 회의에 사로잡히며 떠오르는 갈등도 필수 옵션이다. 그때는 망설이지 말고 ‘지금부터의 나’를 받아들이라고, 페레이라를 둘러싼 사람들은 주장하고 있다. 그러니 페레이라가 정말로 주장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소설이 끝나는 지점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