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 고집했던 '최틀러'의 세 번째 퇴장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최틀러(최중경+히틀러 합성어)’로 불린다.
2003년 당시 재경부 국제금융국장을 맡았던 그는 원화 값이 뛰자 막대한 자금을 외환시장에 쏟아부으며 방어에 나섰다.수출주도형인 우리 경제가 성장하려면 고환율이 필수라는 소신 때문이었다.
시장은 “최중경에 맞서지 말라”며 ‘최틀러’라는 별명을 붙여줬다.최근에는 ‘초과이익 공유제’를 주장한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에게 독설을 퍼붓기도 했다.
이러한 호전적인 일처리 방식 때문일까.최 장관의 인생은 유난히 부침이 많았다.
그는 행시 22회로 관가에 입문해 금융협력과장·외화자금과장·국제금융과장 등을 역임하며 외환과 금융 분야에서 잔뼈가 굵었다.
1991년에는 재무부 국제금융국에서 당시 국장이었던 강만수 산은지주 회장과 한솥밥을 먹으며 신임를 받았다.
강 회장은 자서전에서 최 장관을 “가장 헌신적인 공무원”으로 추켜세웠다.
최 장관 또한 강 회장을 가장 존경하는 선배로 꼽을 정도로 충성심을 보였다.
최 장관은 2003년 초강경 개입으로 환율 하락을 막았지만 수조원에 이르는 손실의 책임을 지고 환율정책 라인에서 물러났다.
이후 세계은행(IBRD) 등에 적을 두다 현 정부 출범과 함께 재정부 1차관으로 복귀했다.
이때 강만수 회장이 그를 강력히 천거했다.
이른바 ‘최강라인’(강만수-최중경)의 탄생이었다.
이후 MB노믹스의 날개로 활약했지만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다시 ‘고환율 정책’ 논란에 발목을 잡혀 4개월 만에 물러났다.
강 전 장관을 대신한 경질이라는 말이 돌았다.
지난해 말에는 지식경제부 장관으로 화려하게 컴백했다.
취임 이후 정유사를 압박해 ‘기름값 100원 인하’ 조치를 이끌어내는 등 여전한 ‘강골’임을 드러냈다.
그런 그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이번엔 환율이 아니라 전기가 문제였다.
지난 18일 최 장관은 초유의 정전사태와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발표문을 읽는 그의 모습에선 ‘최틀러’의 표정은 없었다.
목소리도 맥이 빠져 있었다.
청와대는 수석비서관 회의를 열고 최 장관이 최고 책임자로서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쪽으로 방향을 정한 뒤, 이 같은 입장을 최 장관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이명박 대통령은 16일 한국전력 본사를 방문해 “(이번 사태에 대해)분명히 책임소재를 따져야 한다”며 관계기관을 강하게 질타한 만큼 그의 퇴진은 시간문제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