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와 70년대에 수출주도형 고도 경제성장 정책을 추진해온 한국에서는 '성장은 좋은 것'이라는 인식이 알게 모르게 깔려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 정부도 경제성장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 왔다.
그러나 여기에도 예외가 있어 어떤 조건 하에서는 성장이 오히려 국민의 생활수준을 떨어뜨리는 경우가 있다.
궁핍화성장(immiserizing growth)이 바로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경제성장은 물건을 생산해 낼 수 있는 능력이 향상된 것이기 때문에 더 많은 소득과 더 풍요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해준다.
우리가 경제학의 가장 기초적인 개념으로 알고 있는 수요와 공급의 일치,다시 말해 시장 균형이 성립한다는 것은 비단 하나의 특정한 상품을 이야기할 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경제 전체를 놓고 이야기할 때도 해당된다.
미시경제뿐 아니라 거시경제에도 해당된다는 말이다.
거시경제에서 수요와 공급을 이야기할 때에는 경제 내의 모든 상품 및 서비스의 거래를 이야기하므로 '총'자를 붙여서 총수요,총공급이라고 말한다.
거시경제의 균형은 총수요와 총공급이 일치하는 경우다.
여기서 총공급이란 한 나라의 경제에 공급되는 재화와 서비스를 모두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에는 그 나라에서 생산(Y)한 것과 수입(M)한 재화 및 서비스가 포함된다.
총수요는 사람들이 사서 쓰는 '소비(C)',기업이 물건을 생산하기 위해 돈을 쓰는 '투자(I)', 정부가 거둔 세금을 가지고 물건을 구입하는 '정부지출(G)', 그리고 외국에서 우리 물건을 사서 쓰는 '수출(X)' 등으로 구성된다.
이를 식으로 표현하면 Y+M=C+I+G+X가 된다.
이 식에서 수입(M)을 오른쪽으로 보내면 Y=C+I+G+X-M이 되고,마지막의 X-M(수출에서 수입을 뺀 것)은 흔히 순수출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여기서 한 국가의 생산능력이 커진다는 것,즉 경제성장은 왼쪽의 Y가 커지는 것이고,따라서 경제성장은 소비 투자 정부지출뿐 아니라 국제무역에도 의존하게 되는 셈이다.
그런데 국제무역이 있는 경우 성장을 통해 수출하는 물건을 더 많이 생산하고 수출을 늘리면 이로 인해 물건의 국제시장가격이 변해서 오히려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이 줄어드는 경우가 있다.
수출하는 물건의 값은 싸지고 수입하는 물건의 값은 상대적으로 비싸게 될 수 있는데,경제학에서는 이를 그 나라의 교역조건이 악화되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커피 원두를 수출하고 텔레비전을 수입하는 나라에서 획기적인 재배기술의 발달로 커피 생산이 크게 늘어나는 경우 국제시장에서 커피 수요가 이를 뒷받침해 주지 못하면 커피의 초과공급이 발생하고 결국 커피 가격은 떨어지게 된다.
이렇게 해서 가령 커피 100부대로 텔레비전 1대를 살 수 있던 것이 커피 150부대를 줘야 살 수 있는 경우가 발생했다고 하자.성장의 효과로 더 생산할 수 있는 커피가 40부대 정도라면 성장 후에 140부대의 커피 원두로는 텔레비전 한 대를 살 수 없게 된다.
이는 그만큼 실질소득이 줄어든 것을 의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