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이 공정하고 정확하게 사실을 보도한다는 것이 '반드시' 옳은 이야기는 아니다.
무엇보다 신문에 실리는 글 자체가 완벽한 글이 아니다.
완벽한 글이란 없다.
사실이나 주장,근거에 오류가 있을 수도 있고,왜곡이 있을 수도 있다.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곡학아세(曲學阿世)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다음에 열거한 기사 제목의 흐름은 신문이 객관적이고 공정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상당히 곤혹스러운 일화일 것이다.
■ 나폴레옹 탈출을 보도한 프랑스 신문의 헤드라인 변화
'악마,유형지(流刑地)를 탈출' →'코르시카 출신의 늑대,칸에 상륙' →'맹호,가프에 나타나다' → '전제황제 리용에 진입' →'보나파르트(나폴레옹의 본명)는 북방으로 진격 중' →'나폴레옹은 내일 파리로' →'황제 퐁테느브로에' →'황제 폐하 어젯밤 취일리 궁전에 도착'
1815년 3월1일 나폴레옹은 엘바섬을 탈출하여 20일 후 다시 파리로 돌아온다.
그 20일간의 사태 전개 과정에서 보인 프랑스 최대 일간지 '모니퇴르'의 옆의 제목들은 두고두고 화제가 되고 있다.
'모니퇴르'의 눈부신 변신은 권력과 신문의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불과 20일 사이에 나폴레옹은 살인마에서 아귀로,다시 괴수에서 괴물로,이어 폭군에서 약탈자로 바뀐 뒤 이윽고는 보나파르트를 거쳐 황제 그리고 황제 폐하로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신문이 객관적이든 그렇지 않든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이 '독자'라는 것이다.
우리 자신이 신문을 올바르게 평가하고 비판하면서 신문이라는 도구를 사용해 세상을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으면 그만이다.
우리가 할 일은 신문을 읽을 때 정신을 가다듬고 신중하게 생각하면서 읽는 것이다.
물론 신문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능력'이 있어야 한다.
다음 기사를 잠깐 보자.
'오후 8시10분 현재 진행 중인 추모제에서는 청소년 자유발언대 코너를 통해 참석 학생들이 앞에 나와 정제되지 않은 의견을 발표하고 있다.
또 자살 청소년의 학부모들이 나와 다른 청소년들에 대한 당부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발언대에 나서지는 않았으나 현역 국회의원도 추모제에 자리했다.'
OO일보의 인터넷 판에 실린 기사다.
고1 학생들의 내신등급제 반대 집회를 보도한 기사다.
적어도 이 기사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작성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