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이 일상화돼 버린 현대사회에서 승리와 패배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고,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다. 하지만 인생을 살다보면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때로는 승자가 패자가 되고, 패자도 승자가 될 수 있는 것이 경쟁이고 인생이다.
영국의 세계적인 아동문학작가 마이클 모퍼고(Michael Morpurgo)의 소설 ‘워 호스(War Horse)’에는 패자가 될 뻔했던 승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인 1914년 어느 날, 주인공 앨버트가 사는 마을에 조이라는 이름의 경주마가 태어난다. 조이의 탄생을 지켜보던 앨버트는 가난한 처지의 자신은 평생 가질 수 없을 것만 같은 경주마 조이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얼마 후 소작농인 앨버트의 아버지 테드가 밭을 갈 쟁기를 끄는 말을 사기 위해 마시장의 경매에 참여한다. 테드는 그곳에서 조이를 보게 되고, 아들 앨버트와 마찬가지로 첫눈에 반해버린다. 테드의 친구는 조이 대신 다리가 굵고 힘이 좋은 농사에 적합한 말을 살 것을 권유하지만, 테드는 조이의 거칠고 야성미 넘치는 모습에 눈을 떼지 못한다.
분수 넘치는 경매에 참여
조이가 경매에 부쳐지자 테드는 호기롭게 가장 먼저 값을 부른다. 이때 또 한명의 사나이가 경매에 뛰어든다. 테드가 농사짓고 있는 땅의 지주인 라이온스다.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지주를 한번 이겨보고 싶은 테드는 친구의 만류에도 그와 경쟁을 펼친다. 1기니(guinea·영국의 옛 화폐단위)에서 시작된 경매는 농사짓는 말에게는 최고 가격인 11기니를 넘어서도 계속된다. 마침내 라이온스가 25기니를 부르자 사람들은 지주에게 터무니없는 돈을 쓰게 한 테드를 멋지다며 되레 칭찬한다. 하지만 그 순간 테드가 30기니로 맞받아친다. 조이를 가지고 싶고, 라이온스를 이기고 싶은 마음에 테드가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을 부른 것이다. 예상치 못한 테드의 입찰에 주위는 조용해졌고 조이는 테드에게 낙찰된다.
사람들은 경매에서 승리한 테드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하지만, 그의 친구는 무슨 짓을 한 것이냐며 테드를 닦달한다. 경매인으로부터 조이를 건네받은 테드의 모습에서도 승자의 환희는 찾아보기 어렵다. 어깨가 축 처진 것이 패자에 가까운 모습이다. 차라리 테드에게 모자를 벗어 조롱하듯 경의를 표하는 지주의 표정에서 승자의 여유가 느껴진다. 집으로 돌아온 테드는 농사를 짓기 위해 조이에게 쟁기를 씌워 땅을 개간하려 하지만 황량한 땅을 개간하기에는 조이의 발목은 너무 가늘고 힘이 없어 보인다. 지주는 고집불통 테드가 어리석은 짓을 했다며 조롱하고, 테드의 부인조차 조이를 돈으로 물러오라고 몰아세운다. 테드는 괜한 객기를 부려 농사도 짓지 못하는 말에게 지나친 돈을 지불한 꼴이 되어버렸다.
경매에서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상품을 낙찰 받았지만, 그 과정에서 과도하게 비용을 지불해 사후적으로 승자가 손해를 보거나 곤경에 빠지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또한 상품의 실제 가치보다 가격을 높게 부르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기대했던 것만큼 이익이 발생하지 않아 승자가 상실감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경제학에서는 이러한 경우를 가리켜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라고 한다.
'승자의 저주'부른 낙찰 승자의 저주는 미국 석유회사 엔지니어인 케이펜, 클랩, 캠벨 등이 공동으로 발표한 논문에서 처음으로 언급되었다. 1950년대 미국에서는 멕시코만에서의 석유 시추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석유회사들은 이곳에서의 석유 시추가 큰 이익을 가져다 줄 것으로 확신하며 막대한 자금을 들여 채굴권을 따내기 위해 열을 올렸다. 하지만 시추가 진행돼도 기대했던 만큼의 수익은 발생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가장 높은 금액으로 입찰에 응한 기업이 비록 채굴권은 따냈지만 결과적으로는 막심한 손해를 보게 되었다. 엄청난 노력과 비용을 들여 쟁취한 승리가 저주로 끝난 셈이다.
케이펜과 동료들은 석유 채굴권 경매에서 발생한 이와 같은 역설적인 상황에 대해 연구하였다. 그들은 석유 시추 기술이 부족했던 당시의 상황에 집중하였다. 기술이 부족하다 보니 석유가 어느 곳에 매장되어 있고, 또 그 양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측정할 수 없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기업들이 예상한 석유매장량은 실제와 다를 수밖에 없다. 평균적으로는 석유회사들의 예상치가 실제 매장량에 상당히 근접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경매에서 승리한 회사의 예상치가 과대평가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비록 경매에서 승리는 하였지만, 실제로 시추하여 얻게 되는 이익은 경매에 들어간 비용을 한참 밑도는 수준에 그쳤던 것이다.


